1950년의 무더위[임용한의 전쟁사]〈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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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학생 때부터 답사를 좋아했다. 대학원 진학 준비로 바빴던 학부 4학년 때도 정규 답사를 따라갔다. 그 덕에 노는 걸 좋아해서 사학과에 왔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현장에 가면 기록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많은 것이 보인다. 전적지(戰跡地)의 경우는 더 절실하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전적지를 다 돌아볼 수가 없다 보니, 미처 답사를 가보지 못하고 글을 쓰는 경우도 있다. 나중에 현장에 가보면 반드시 후회하게 된다. 전적지 답사는 해당 전투가 벌어졌던 시기에 맞춰서 가야 한다는 애로도 있다. 현장을 찾아도 계절이 맞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계절에 맞춰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 수십 년간 가보지 못하고 있는 전적지가 있다. 경북 칠곡군 왜관과 다부동, 경남 창녕군 영산 등 6·25전쟁 당시 낙동강 방어선의 현장이다. 전투는 주로 가파른 고지에서 벌어졌는데, 절정에 달했던 시기가 8월 한여름이었다. 30도가 넘는 무더위에 고지를 올라갈 엄두가 나질 않는다. 20, 30대에 갔어야 했다고 한탄하면서 나이만 들어간다. 더 늦기 전에 올해는 가보자고 굳게 결심했는데, 40도가 넘는 폭염이 덮쳤다. 1950년의 여름은 올해만큼은 아니었지만, 37도를 웃도는 전례 없는 무더위였다. 나무 한 그루 없는 고지에서 병사들은 제대로 먹지도 마시지도 못하면서 싸웠다. 더위와 갈증으로 쓰러진 병사의 수는 알지도 못한다. 아니, 당시에는 더위와 갈증 걱정도 사치였다. 격전지의 경우 갓 징집해 온 병사들은 첫 전투에서 80%가 쓰러졌다. 이런 사정은 북한군도 마찬가지였다. 8월의 태양 아래 시신은 하루면 썩어 문드러졌고, 숨도 쉴 수 없는 악취를 또 다른 젊은 생명으로 덮었다. 너무나 불편한 이야기다. 그렇다고 해서 이 고난과 비극을 잊어서도 안 된다. 이념으로 왜곡해서도 안 된다. 임용한의 전쟁사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천광암 칼럼 오늘의 운세 내가 만난 명문장 임용한 역사학자©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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