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이뉴스24 정지원 기자] '아침마당' 공근식 박사의 일대기가 공개됐다.
27일 방송된 KBS 1TV '아침마당-화요초대석'에서는 수박 농사를 하다 42세에 러시아로 유학을 떠나 우주공학박사가 된 공근식 박사가 출연했다.
'아침마당' 방송 화면 갈무리 [사진=KBS]공근식 박사는 모스크바 물리기술대학교에서 10년 만에 우주공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공근식 박사는 "고등학교 때 대전에 카이스트가 생겼고 정말 가고 싶었다. 하지만 내 성적은 엉망이었다. 수학 과학은 좋아했지만 나머지 과목에 관심이 없었다. 차라리 집에서 혼자 공부하자 생각하고 고등학교를 자퇴했다"고 말했다.
이어 공근식 박사는 "집에서 공부를 하니 나태해지더라. 학원에 갈 형편도 아니어서 계속 공부를 미루게 됐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수박 농사를 시작했다. 20세 때는 남의 땅을 임대해서 수박 농사를 했다. 수박 농사는 완전히 망했다. 토질도 몰랐고 경험도 없으니 수박이 많이 죽고 팔 수 없는 수박이 나왔다. 땅 임대 때문에 빚이 생겼고, 해남에서 농사를 배웠다. 그렇게 신품종 수박 씨앗을 받게 됐고 우리 수박 밭에서 찍은 사진이 씨앗 회사 홍보지에 실릴 정도로 잘 됐다. 하지만 2002년 태풍 때 큰 피해를 입었다. 그 때가 내 인생 전환점이 됐다. 그렇게 공부를 시작한 것"이라 말했다.
공근식 박사는 2002년 태풍으로 자연의 무서움을 느낀 뒤 공부를 시작하게 됐다고. 공 박사는 "수박 출하를 하러 대전역에 갔다가 집에 가는데, 큰 게시판이 하나 보였고 야학교에서 학생을 모집한다는 전단이 있었다. 그대로 야학교를 찾아갔다. 그 때가 28세였다. 카이스트 분들이 자원봉사로 고등학교 과정을 가르쳐 주는 시간이었는데, 수업을 들으니 너무 쉽더라. 흥미가 전혀 안 생겼다. 그 때 카이스트 물리학 박사님의 수업을 듣는데 그것도 너무 쉽더라. 그래서 몰랐던 문제를 질문했는데, 내가 몰랐던 훌륭한 방식으로 해결해주셨다. 그 때 꽂혔다. 그래서 농사를 하고 밤에 야학교에 가서 5년을 수업 들었다. 이후 검정고시와 수능 시험을 보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배재대 전산전자물리학과에 입학했다"고 회상했다.
공근식 박사의 공부 열정은 대학 입학 이후에도 끝나지 않았다. 공 박사는 "배재대학교를 다니면서 물리학과 교수님이 카이스트에서 수업을 듣지 않겠냐고 제안을 받았다. 이후 카이스트 청강을 하는데 너무 어렵더라. 수업이 끝나면 충남대학교 물리학과에 갔다. 교수님 연구실에 무작정 들어가서 내 사정을 말씀 드리고 청강 가능한 지 여쭤봤고 흔쾌히 허락받았다. 낮에는 농사와 카이스트 청강, 밤에는 충남대학교 청강, 모르는 게 있으면 배재대학교에서 질문했다"고 남다른 열정을 드러냈다.
이후 공근식 박사는 러시아 유학을 결정한 배경을 전했다. 공 박사는 "배재대학교 교환 교수로 온 고려인 교수님이 계셨다. 그 분의 연구를 도와드렸고 우리 밭에 몇 번 왔다. 그러던 중 '자네는 농사를 하지 말고 연구자의 길로 가라'고 러시아에서 공부하며 도움을 받으라고 했다. 그렇게 모스크바 물리기술대학교에서 온 두 분 중 한 분께 찾아가서 가르침을 받았다. 완전히 매료됐다. 러시아에서 가서 이걸 배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고, 한 달 뒤 러시아로 떠났다"고 말해 모두를 놀라게 했다.
이어 공 박사는 "러시아어도 못하고 컴맹이었다. 학과 공지를 확인 못해서 중간고사를 못 봤고, 대학 입학 6개월 만에 퇴학을 당했다. 다시 한국에 와서 부모님과 동네 사람들에게 '잠깐 할 일 있어 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로부터 3개월 후에 모스크바 물리기술대학에 재입학을 하게 됐다. 1학년 때 귀에 익은 수식이 들려서 무작정 찾아가 청강을 요청했었다. 그 과목이 양자역학이었다. 그 때 시험을 봤는데 만점을 받았다. 교수님이 '다음 학기 꼭 와서 수업 들어라'고 했는데, 다음 학기 때 내가 퇴학 당한 걸 알고 그 교수님이 총장님께 찾아가 날 다시 재입학하게 해달라고 읍소했다. 그렇게 우주항공공학과로 재입학을 하게 됐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공 박사는 "어머니가 도와주지 않았다면 난 공부하지 못했다. 박사학위 발표일 때 어머니가 위독하셨다. 박사학위 논문 끝나자마자 한국에 왔는데 그 때가 코로나19 시기였다. 격리 이틀 째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어머니 임종을 지켜보지 못했다. 박사 학위 통과됐다는 소식을 어머니께 전화로 전해드렸는데 그 기뻐하던 목소리가 마지막이었다"고 말해 안타까움을 전했다.
/정지원 기자(jeewonjeong@joynews24.com)포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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