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라디슬라프 헤라스케비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추모 헬멧'을 쓰고 경기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우크라이나 스켈레톤 선수인 블라디슬라프 헤라스케비치에게 출전 금지 조처를 내렸습니다.
IOC는 오늘(12일) "헤라스케비치 선수는 IOC 선수 표현의 자유 지침을 준수하지 않아 2026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 올림픽 참가가 금지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스켈레톤 1, 2차 시기는 현지 날짜로 12일에 열리고, 3, 4차 시기는 13일에 진행됩니다.
출전 선수 명단에 오른 헤라스케비치 선수의 이름 옆에는 '실격'(DSQ·Disqualified)이 표시됐습니다.
2018년 평창에서 12위, 2022년 베이징에서 18위에 올랐던 헤라스케비치 선수는 러시아와 전쟁에서 희생된 우크라이나 운동선수 24명의 이미지가 새겨진 추모 헬멧을 쓰고 이번 올림픽 연습 주행에 나섰습니다.
그러나 IOC는 헤라스케비치 선수의 헬멧이 올림픽 헌장 제50조 2항 '어떠한 종류의 시위나 정치적, 종교적, 인종적 선전은 올림픽 경기장, 시설 또는 기타 지역에서 허용되지 않는다'는 규정을 위반했기 때문에 착용할 수 없다고 유권해석을 내렸습니다.
IOC는 '다만 추모 완장의 착용은 반대하지 않는다'는 절충안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대해 헤라스케비치는 "사망한 선수들의 희생이 있어 우리가 여기에서 하나의 팀으로 경쟁할 수 있었다"며 "나는 그들을 배신할 수 없다"고 추모 헬멧을 계속 쓰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IOC는 "헤라스케비치 선수와 여러 차례 메일을 주고받았고, 오늘 오전에도 커스티 코번트리 IOC 위원장이 헤라스케비치 선수를 만나기도 했다"며 "헤라스케비치 선수가 어떠한 타협안도 고려하지 않겠다고 밝혀 유감스럽게도 그의 이번 대회 참가 자격을 박탈하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AP통신은 "헤라스케비치 선수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에 이의를 제기하겠다고 밝혔다"고 보도했습니다.
2022년 베이징 대회에서 헤라스케비치는 경기를 마친 뒤 '우크라이나 전쟁 반대'(No war in Ukraine)라는 표지를 들었고, 그때 IOC는 '단순히 평화를 촉구한 것'이라며 올림픽 헌장 위반이 아니라는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당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이었습니다.
이날 직접 경기장을 찾아 헤라스케비치와 면담한 코번트리 IOC 위원장은 취재진과 만나 "여기 올 예정은 아니었지만, 선수와 직접 만나 대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며 "나를 포함해 누구도 헤라스케비치 선수가 전하려는 메시지 자체에 반대하지 않는다. 추모와 기억을 위한 강력한 메시지라는 것도 잘 안다"고 했습니다.
그는 그러나 "경기장 안에서 해결책을 찾는 게 중요했지만 아쉽게도 그러지 못했다"며 "그가 경기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지만, 이번 조치는 말 그대로 규칙과 규정에 대한 문제다. 우리는 모두가 안전한 환경에서 경기하도록 만들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이는 어떤 메시지도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설명했습니다.
IOC의 출전 금지 조처가 나오자 헤라스케비치는 자신의 X 계정에 "이것은 우리 존엄성의 대가"라고 글을 남겼습니다.
그는 "경기에 나갈 수 없게 됐다. 올림픽의 순간을 갖지 못하게 됐다"며 "내 동료들은 살해당했고, 그들의 목소리는 너무 커서 IOC가 두려워하고 있다. 나는 코번트리 위원장에게 이번 결정이 러시아의 논리에 동조하는 것이라는 점을 알렸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내 동료들의 희생 덕분에 이번 올림픽이 열릴 수 있다는 점을 진심으로 믿는다"며 "IOC가 사망한 선수들을 배신한다고 해도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IOC가 올림픽에서 정치적인 메시지를 전달한 선수를 제재한 사례는 여러 차례 있습니다.
1968년 멕시코 하계 올림픽 육상 200m 우승자인 미국의 톰 스미스와 3위 존 카를로스 선수가 시상대에서 '흑백 차별'에 반대하며 검은 장갑을 낀 주먹을 들어 올렸다가 선수촌에서 퇴출당한 사건이 가장 유명합니다.
가깝게는 2024 파리 하계올림픽 당시 난민팀 소속으로 출전한 아프가니스탄 브레이킹 선수 마니자 타라시가 예선 경기 도중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 자유를'(Free Afghan Women)이라는 메시지를 펼쳐 실격 처리된 바 있습니다.
(사진=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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