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 사도 돈 낸다"...AI가 바꾼 메모리 계약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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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은 기자 입력 2026.06.27 08:00

마이크론, SCA 첫 공개
오더컷 악순환 끊나
삼성·SK도 장기계약 주목

[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미국 메모리 반도체 업체 마이크론 테크놀로지가 발표한 '전략적 고객 계약(SCA·Strategic Customer Agreement)'이 메모리 업계의 화두로 떠올랐다.

시장의 관심은 다음 달 실적 발표를 앞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얼마나 많은 SCA를 체결했고, 계약 규모는 어느 정도인지에 쏠리고 있다.

마이크론 고대역폭메모리(HBM)4 [사진=마이크론]

26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이르면 다음 달 7일, 늦어도 8일께 올해 2분기 잠정 실적을 발표하고 월말에 확정 실적을 낼 것으로 보인다.

잠정 실적을 별도로 발표하지 않는 SK하이닉스는 다음달 23일경 확정 실적 발표와 함께 컨퍼런스콜을 진행할 예정이다.

사업 현황에 대한 질의 응답이 이뤄지는 컨퍼런스콜에서 양사의 SCA 체결 등에 대한 언급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마이크론이 먼저 발표한 SCA는 기존 장기공급계약(LTA)보다 한 단계 강한 계약 방식이다. 회사는 데이터센터와 소비자, 자동차 고객을 대상으로 총 16건의 SCA를 체결했다고 공개했다.

대부분 계약 기간은 5년이며, 현재 계약만으로 D램 공급 물량의 약 20%, 낸드플래시 공급 물량의 약 3분의 1이 묶였다. 마이크론은 향후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이 SCA를 통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핵심은 '테이크 오어 페이(Take-or-Pay)' 구조다. 고객은 일정 물량을 계약하면 실제로 모두 가져가지 않더라도 계약상 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가격도 일정 범위 안에서 움직인다. 계약에는 가격 하한선(Floor)과 상한선(Ceiling)이 함께 설정된다.

예를 들어 현재 메모리 가격이 100이라고 가정하면, 공급업체와 고객은 향후 5년간 가격 하한선을 90, 상한선을 140으로 정해 계약을 맺는다.

시장 가격이 80으로 떨어져도 고객은 90에 구매해야 하지만, 반대로 가격이 180까지 오르더라도 140 이상은 지급하지 않는 식이다.

엔비디아 젠슨 황 CEO가 지난 3월 GTC 2026 현장에서 삼성전자 부스를 방문해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좌측부터 황상준 메모리개발담당 부사장, 엔비디아 젠슨 황 CEO, 한진만 파운드리 사업부장 사장 [사진=삼성전자]

생산능력을 미리 예약하는 개념이라는 점도 특징이다. 호텔 객실 100개를 예약한 뒤 실제로는 70개만 이용하더라도 100개 객실 비용을 부담하는 것과 비슷하다. 메모리 업체가 고객을 위해 생산능력을 미리 배정하는 만큼 계약 물량을 가져가지 않더라도 일정 비용을 부담하도록 설계된 셈이다.

SCA가 주목받는 이유는 메모리 산업이 수십 년간 반복해온 '오더컷' 악순환을 완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 메모리 시장은 대표적인 경기 순환 산업이었다. PC와 스마트폰 판매가 둔화되면 고객사들은 주문 물량을 줄이거나 인도를 연기했다. 하지만 메모리 공장은 가동을 쉽게 멈출 수 없어 생산은 계속됐고, 재고가 쌓이면서 가격이 급락했다.

결국 메모리 업체들은 적자를 감수하며 가격을 낮춰 재고를 처분했고, 이후 투자를 줄였다. 수년 뒤 다시 공급 부족이 발생하면 가격이 급등하는 사이클이 반복됐다.

마이크론은 이번 컨퍼런스콜에서 이 같은 구조가 현재 공급 부족의 원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회사는 "2023년 일부 고객들이 매우 공격적인 가격을 요구했고, 당시 업계 전반의 가격과 마진이 크게 낮아지면서 대부분의 설비투자가 중단됐다"며 "그 결과 현재의 공급 부족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SCA는 이러한 악순환을 줄이기 위한 새로운 사업 모델이라는 게 회사의 설명이다. 고객은 장기간 물량을 확보하고, 메모리 업체는 안정적인 수요를 바탕으로 생산과 투자를 계획할 수 있다.

가격 하한선만으로도 과거 어느 업황 사이클의 최고 수익성을 웃도는 수준의 이익률을 확보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SK하이닉스 공장 전경.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투자은행 골드만삭스도 이번 실적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으로 SCA를 꼽았다.

골드만삭스는 "가격 하한이 포함된 장기 계약은 메모리 기업의 실적 변동성을 낮추고 피크 이익에 적용되던 할인 요인을 완화할 수 있다"며 "단순한 사이클 호황이 아니라 이익의 지속성과 하방 방어력이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가격이 안정화 되려면 공급 물량이 크게 늘어야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신규 팹 건설에는 수년이 걸리고 숙련 인력 부족과 인허가, 전력 인프라 확보 등이 생산능력 확대를 제약하고 있어서다.

국내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이 감지된다.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삼성전자도 올해 들어 AI 고객사를 중심으로 다수의 장기 메모리 공급 계약을 체결했으며 최근에도 다수의 협상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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