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이의 테크인사이드] 테크기업은 왜 할리우드를 노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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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이의 테크인사이드] 테크기업은 왜 할리우드를 노릴까

“워너브러더스 인수전엔 생각보다 훨씬 더 거대한 테크(기술)적 담론이 있다.”(멜리사 오토 S&P글로벌 비저블알파 리서치총괄)

넷플릭스의 워너브러더스 영화·TV 스튜디오 인수 소식이 전해진 게 불과 나흘 전이다. 넷플릭스에 밀린 파라마운트는 이후 래리 엘리슨 오라클 회장의 자금을 앞세워 워너브러더스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 개시를 선언했다. ‘해리 포터’ ‘반지의 제왕’ 등 대작부터 ‘카사블랑카’ ‘시민 케인’ 같은 고전까지 쌓아온 역사만 102년인 할리우드 엔터공룡의 운명이 테크기업들 손에 쥐어졌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번 인수전은 미디어 기업들의 극장 유통망과 스트리밍 경쟁력 확보 경쟁 정도로 읽히기 쉽다. 월가 일각과 실리콘밸리에선 조금 다른 해석이 나온다. 인공지능(AI) 개발에 쓸 수 있는 100년치의 대규모 영상 데이터가 이들 기업이 노리는 진짜 ‘전리품’이라는 시각이다.

AI 키우는 넷플릭스

넷플릭스는 그동안 오픈AI처럼 전통적인 AI 공룡으로 언급돼온 기업은 아니다. 알고리즘 추천에 AI를 활용하면서도 겉으론 크게 드러내지 않는 전략을 썼다. 내부적으론 일찌감치 흥행 확률 예측부터 에피소드 길이 결정, 광고 삽입, 콘텐츠 후반 작업 등 전반에 AI를 적용했다. 대규모언어모델(LLM)의 다음 전장으로 언급되는 거대멀티모달모델(LMM) 경쟁에서 넷플릭스가 우위를 점할 환경이 이미 세팅된 셈이다.

넷플릭스와 워너브라더스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넷플릭스와 워너브라더스 로고. 로이터연합뉴스

여기에 워너브러더스의 지식재산권(IP)까지 확보하면 영상AI 전쟁에서 넷플릭스의 힘은 더욱 막강해진다. 예컨대 ‘폭발 장면을 만들라’고 AI에 시키려면 영상은 물론 폭발음, 건물이 무너진다는 맥락의 텍스트(대본), 자막까지 결합된 데이터 세트가 필요하다. 워너브러더스가 보유한 할리우드 IP는 영상은 물론 대본과 자막, 사운드 효과까지 완벽하게 동기화돼 있다. 테크 전문가들이 워너브러더스를 ‘AI 네이티브’ 제작 공정을 현실화하기 위한 핵심 열쇠로 보는 이유다.

파라마운트 역시 오라클 창립자 엘리슨 가문의 자금을 앞세워 워너브러더스를 노리고 있다. 파라마운트 최고경영자(CEO)인 데이비드 엘리슨은 래리 엘리슨의 아들로 지난 8월 회사를 사들였다. 인수 직후 파라마운트는 AI 클라우드 기반으로 제작 파이프라인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콘텐츠를 일종의 데이터 자산으로 취급하고, 제작 전 과정을 클라우드 위에서 AI로 관리하는 접근법이다. 워너브러더스 인수에 성공할 경우 오라클 입장에서 워너브러더스는 파라마운트에 이어 거대한 ‘클라우드 쇼케이스’가 될 수 있다.

해외에선 '수직계열화'하는데…

그동안 미디어 영역은 테크와는 거리가 먼 산업으로 여겨졌다. 오픈AI와 뉴스코퍼레이션 간 계약이나 구글이 레딧 데이터를 사는 수준의 저작권 논의가 대부분이었다. 워너브러더스 인수전은 테크기업들이 미디어 공룡의 데이터는 물론 내러티브를 포함한 제작 공정과 고객 인프라까지 한꺼번에 빨아들이려 한다는 점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AI가 영상을 생성하고 재가공·개인화하는 시대에 누가 먼저 대규모 프리미엄 영상을 장악하느냐를 두고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 기업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중국계 콘텐츠 공룡인 텐센트는 가성비와 배포 능력을 앞세워 글로벌 클라우드 시장을 공략 중이다.

이번 워너브러더스 인수전의 이면엔 실리콘밸리의 기술 권력, 할리우드 문화 권력, 워싱턴DC 정치 권력 간 협력과 그 뒤의 알력 다툼까지 여러 긴장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콘텐츠 데이터와 클라우드, AI 모델, 제품화까지 수직계열화하려는 시도도 읽힌다. 한국 테크·미디어업계는 이럴 때 어떤 준비를 해야 할까. 단순히 웨이브와 티빙을 합병하느냐 마느냐 수준의 논의로는 한참 부족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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