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첫날 청소 근로자 김모 씨(64)가 정류장에서 가슴을 졸인 건 추위 때문만은 아니었다. 4시 6분이면 오던 첫차가 나타나지 않았고, 뒤늦게 동료를 통해 파업 소식을 접했다. 김 씨는 그날 일당 대부분을 털어 택시를 타고 출근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서울 시내버스는 지하철과 달리 파업 시 ‘필수 운행’ 규정이 없다. 7018대가 한 번에 멈춰서도 제재할 수 없다. 그런데 이 혼란 속에서도 기어이 시동을 건 478대(6.8%)의 버스가 있었다. 운전사들은 자발적으로 정복을 입은 채 요금 단말기를 끄고 승객을 실어 날랐다. 이들이 누구인지, 왜 그랬는지 궁금했다. 수소문 끝에 한 명과 연락이 닿았다.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운전대를 잡은 운전사 임현섭(가명·63) 씨는 담담하게 그 이유를 말했다. “추운 날씨에 오지 않는 첫차를 기다릴 ‘단골 승객’들이 눈에 밟혀 도저히 차고지에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매일 새벽 눈인사를 하던 빌딩 청소원과 학교 급식 조리원, 시장 상인이 단순한 불편을 넘어 하루의 생계를 위협받을까 봐 걱정했다는 것이다.특히 그는 어르신들의 고립을 우려했다. 젊은 사람은 애플리케이션으로 우회 경로를 찾거나 택시라도 부르지만, 스마트폰에 익숙하지 않은 단골 승객은 그러기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는 얘기다. 실제로 파업 기간 임 씨의 버스에 오른 첫차 승객 대부분은 고령층이었다고 한다.
물론 동료 운전사 대다수가 파업에 참여한 상황에서 차고지를 나서기는 쉽지 않았다. “동료와 마주치면 얼굴이 따가울 정도로 미안했죠. 저도 파업에 반대하는 건 결코 아니거든요.” 그러나 ‘부모님 같은 분들이 정류장에서 마냥 기다리실 게 뻔한데’라는 걱정이 발걸음을 떼게 했다.
이번 파업을 둘러싼 노사의 입장 차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정기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해 실질임금을 높여 달라는 노조의 요구는 근로자로선 당연한 주장이다. 반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인건비를 감당해야 하는 사측과 버스회사 적자 보전에 매년 4500억 원 안팎을 쓰는 서울시의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다만 누가 옳든, 새벽 첫차에 생계를 걸어야 하는 이들이 볼모가 되는 현실은 이제 멈춰야 한다. 노조의 단체행동권 못잖게 첫차 근로자의 이동권도 소중하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이가 바로 일선 운전사들이다. 버스 노사는 통상임금 산입 범위를 두고 또 한번 충돌을 예고했다. 그전에 필수 운행 제도를 논의하면 어떨까. 버스 의존도가 높은 지역과 시간대만이라도 말이다. 그건 노조의 파업권을 크게 해치지 않으면서도 ‘밥벌이하는 사람끼리의 연대’를 지킬 방법이 될 수 있다.조건희 사회부 차장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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