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식탁에 오르는 계란은 저렴하면서도 질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반세기 동안 ‘공영 도매시장’ 체계에서 소외된 채 유통 정글에서 버텨온 산란계 농가의 고충이 서려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최근 이들 농가의 가격 조사 및 발표 행위를 ‘담합’으로 규정하고 과징금 부과를 예고했다. 이는 그동안 정부의 유통구조 개선 사업에서 배제돼온 산란계 농가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기계적 판단이다.
계란 유통의 시초는 1980년대 초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5년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개장과 함께 한우와 돼지, 사과와 배추 등 주요 농축산물이 투명한 경매와 즉시 결제라는 제도적 울타리 안으로 들어왔다. 유독 계란만 이 유통구조 개선 사업에서 제외됐다. 이후 전국으로 공영 도매시장이 확대되는 과정에서도 계란을 위한 자리는 마련되지 않았다.
공적 인프라에서 배제된 산란계 농가는 상인에게 물건을 먼저 넘기고 한달 뒤에나 가격을 확정받는 기형적인 ‘후장기(사후 정산)’ 관행에 노출됐다. 이런 유통 사각지대에서 이들 농가가 선택한 자구책은 산지의 실제 거래 동향을 조사해 발표하는 것이었다. 이는 가격을 임의로 결정하는 담합이 아니라, 개별 농가가 거대 유통 상인과 대등하게 협상할 수 있는 최소한의 기준점, 즉 ‘협상의 틀’을 마련하기 위한 필사적인 노력이었다.
정부의 이번 조치가 당혹스러운 이유는 그간의 정책 행보와 상충하기 때문이다. 산란계 농가가 생존을 위해 조사·발표한 기준 가격을 지난 50년간 국가 통계 조사와 수급 전망에 요긴하게 활용한 당사자가 바로 정부다. 심지어 조류인플루엔자(AI) 발생 시 농가에 지급하는 살처분 보상금의 법적 기준조차 이 가격을 토대로 산정했다.
국가가 반세기 넘게 이 체계를 공적 지표로 인정하고 활용해왔다면, 농가로서는 이를 ‘적법한 시장 룰’로 신뢰하는 것이 당연하다. 이제 와서 상황이 변했다는 이유로 과거의 관행을 범죄로 몰아세우는 것은 행정의 일관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단순한 제재와 징벌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오히려 산란계 업계만 위축시킬 우려가 크다. 담합 논란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계란 역시 한우와 사과, 배추처럼 투명하고 안전한 공적 유통 체계 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
과거 불투명한 거래가 횡행하던 농산물 시장을 정화한 결정적 요인은 선정산과 결제를 보증하는 시스템 도입이었다. 계란 역시 전체 유통 물량의 일부라도 공신력 있는 기구를 통해 투명하게 거래되고 실시간으로 결제되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
다른 품목처럼 출하 즉시 대금을 정산받을 수 있는 안전한 유통 인프라 구축에 정부가 나선다면, 인위적인 조사 없이도 시장이 납득할 수 있는 ‘표준 가격’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것이다. 이런 체계가 마련되지 못했기에 국내 농축산물 중 계란만이 담합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수시로 공정위 조사와 감시를 받는 처지가 됐다.
과징금 처벌에 앞서 계란도 투명하고 현대화된 정산 시스템을 갖출 수 있도록 실질적인 유통구조 개선 사업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반세기 넘게 이어진 소모적인 논란을 매듭짓고, 농민과 소비자 모두가 상생하는 유일하고도 확실한 길이다.

1 day ag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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