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05년 명나라. 환관 출신 제독 정화(鄭和)는 300여 척의 배에 2만7000명을 이끌고 인도양으로 향한다.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하기 87년 전이다. 그의 보선(寶船)은 콜럼버스가 탄 산타마리아 호보다 길이가 5배, 적재량은 수십 배에 달했다. 항해 기술도 압도적이었다. 그러나 영락제 사후, 사대부 관료들은 항해 기록을 모조리 불태웠다. 세계 최강의 함대는 그렇게 스스로 사라졌다. 600년이 흘렀다. 스스로 바다를 포기했던 중국이 다시 항해에 나섰다. 출해(出海), 즉 해외 진출이 중국 비즈니스계의 최대 화두다.
지옥 경쟁이 빚어낸 경쟁력
1990년대 화웨이의 저가 통신장비로 시작된 중국의 출해는 2010년대 샤오미와 오포 등이 신흥국 스마트폰 시장을 장악하며 본격화됐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동안 틱톡은 숏폼을 전 세계로 퍼뜨렸고, 테무와 쉬인은 글로벌 e커머스 질서를 흔들었다. BYD(전기차), 팝마트(아트 토이), 하이디라오(외식) 등 이제 중국 브랜드는 영역을 가리지 않고 가성비 수출에도 머물지 않는다. 혁신적 기술과 라이프스타일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파고들고 있다.
이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네이쥐안(內捲), 즉 중국 내 극한 경쟁에서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정체된 내수 시장에 공급 과잉이 겹치며 중국은 거의 모든 산업에서 출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여기서 살아남은 기업에 글로벌 시장은 오히려 블루오션이다.
지정학적 갈등은 역설적으로 출해를 가속화했다. 관세 장벽을 피해 현지에 생산기지를 세우고, 인재와 경영 방식마저 현지화한다. 인공지능(AI)은 이 파도를 더 키우고 있다. 언어·물류·마케팅 등 수출 장벽이 낮아지며, 1인 기업도 수십 개 국가 시장을 동시 공략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중국의 무역 흑자는 사상 처음 1조달러를 넘어섰다. 출해의 물결은 글로벌 무역 불균형을 넘어, 각국 제조업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
韓 기업이 택해야 할 항로는?
한국도 중국의 출해에서 예외가 아니다. ‘외산 가전의 무덤’이라고 불리던 한국에서 로보락은 수년째 로봇청소기 1위를 지키고 있다. BYD, 팝마트, 하이디라오 등도 마찬가지로 우리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더 큰 전장은 해외 시장이다. 스마트폰과 자동차에서 식품, 뷰티, 엔터테인먼트까지, 이제 어느 나라를 가든 중국 제품과 경쟁해야 한다. 속도와 가격으로는 버겁다. 우리 무기는 기술과 신뢰, 그리고 스토리의 힘이다.
기회도 있다. 배터리와 전기차 등 중국 기업의 글로벌 생산 확대는 현지 기반을 갖춘 우리 소부장 기업에 새로운 문을 열어준다. 중국 e커머스와 디지털 콘텐츠 플랫폼 역시 위협인 동시에 강력한 유통망이다. 넷플릭스가 K콘텐츠를 세계로 확산시켰듯, 중국 플랫폼을 우리 제품 및 지식재산권(IP)이 글로벌 소비자와 만나는 통로로 활용할 수 있다.
정화의 함대는 외부의 적이 아니라 사대부의 계략에 의해 스스로 무너졌다. 다시 항해에 나선 중국 브랜드 선단은 이번에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막을 수 없는 파도라면 때론 올라타고 때론 맞서며, 우리만의 항로를 찾아야 한다.
김영수 베이징대 한반도연구센터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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