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섭의 재계 인사이드] 녹슨 美 조선소 독을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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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섭의 재계 인사이드] 녹슨 美 조선소 독을 바라보며

2010년 개봉한 ‘더 컴퍼니 맨’의 배경은 미국 미시시피주에 있는 조선소다. 영화는 2008년 금융위기 직후 가상의 대기업인 GTX가 조선소 두 곳을 폐쇄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근로자 3000명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었고, 배를 만들던 독(dock·선박건조장)은 흉물이 됐다. 주인공 바비 워커(벤 애플렉 분)도 구직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조선업만 해본 그를 찾는 기업은 없었다.

15년 전 영화가 머릿속에 떠오른 건 얼마 전 미국 조선사 여러 곳을 취재한 직후였다. 미국 조선사들의 암담한 현실은 영화의 배경인 2008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았다. 비어 있는 독에는 녹이 한가득했다. ‘사라진 일감→조선소 폐쇄→하청업체 붕괴’로 이어지는 악순환도 여전했다.

미국 중공업의 시대는 끝났다?

[김우섭의 재계 인사이드] 녹슨 美 조선소 독을 바라보며

조선업 추락 배경은 영화 중간중간에 잘 설명돼 있다. GTX의 창업주 제임스 샐링거(크레이그 넬슨 분)는 조선소 폐쇄에 반발하는 회사의 2인자 진 맥클러리(토미 리 존스 분)에게 이런 말을 한다. “미국 중공업의 시대는 끝났어. 높은 인건비 탓이지. 자동차와 철강도 어렵지만, 조선업은 완전히 끝물이야.”

추가 투자에 대한 의견도 엇갈렸다. “설비를 현대화하고 인력을 보충해 영업에 나선다면 적자를 면할 수 있다”는 맥클러리의 설득에도 샐링거는 “투자를 원하는 주주는 한 명도 없다. 나는 손해 보는 장사를 하지 않겠다”며 꿈쩍도 안 한다.

다른 점은 샐링거가 내다본 미래와 달리 현실에선 미국 조선업이 부활의 날갯짓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심에는 한국과 미국 조선업 협력의 상징인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있다. 조선업 기반이 허물어진 미국에서 한국 조선 ‘빅3’(HD현대중공업 한화오션 삼성중공업)와 현지 회사들이 힘을 합쳐 조선업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 있는 것이다.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에디슨슈에스트오프쇼어(ECO) 조선소가 대표적이다. 이달 초 찾은 이 조선소에선 직원들이 바지선 등 모두 세 척을 수리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부활 준비하는 美 조선소

2020년 이후 한 척의 배도 만들지 못했지만 현재는 컨테이너선 6척 수주를 눈앞에 두고 있다. 첫 배는 한국에서 짓고, 이후엔 두 회사가 함께 2~5번째 배를 건조한다. 마지막 배는 ECO가 만들 예정이다. ECO 관계자는 “한국 조선사의 도움이 없었다면 과감한 투자와 수주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며 “마스가가 미국 조선사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놨다”고 말했다.

독을 새로 짓고, 대형 크레인을 세우는 등 인프라 투자가 뒤따르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인력도 두 배 이상 늘릴 예정이다. 펜실베이니아주에 있는 한화필리조선소는 더 활기차다. 코로나19 때 100여 명으로 줄였던 인력은 현재 2000명이 됐다. 내년부터 시작되는 7조원 투자를 통해 독을 확장하고, 인력도 더 늘리기로 했다.

영화는 맥클러리가 폐쇄된 조선소를 직접 사들인 뒤 워커 등을 불러 모아 다시 조선소 문을 여는 장면으로 끝난다. 과거에 비해 인력도, 자금도 형편없이 줄어들었지만 순양함과 호위함을 만들던 옛 영광을 되찾겠다는 다짐을 빼놓지 않았다.

주인공의 바람대로 미국 조선업이 한국과 손잡고 세계를 호령하던 1950년대 영광을 되찾을지는 미지수다. 중요한 건 미래가 없던 미국 조선업에 새 희망이 생겼다는 점이다. 미국 조선업체들은 일감이 밀려들 것이란 기대에 부풀어 있고, 근로자들은 더 이상 공장 폐쇄에 따른 실직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국 조선업 부활의 한복판에 뛰어든 한국의 노력이 벌써부터 효과를 보고 있는 것이다. 마스가 프로젝트가 한·미 조선업 동맹을 넘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시작된 ‘퍼펙트스톰’(복합위기)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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