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사랑은 언제, 누구였을까. 아무래도 첫사랑 얘기를 꺼내려면 고교 1학년 때를 말해야 할 것 같다. 내 고향은 충남하고도 서천. 서천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공주사범학교란 이름의 고교에 들어갔다. 사범학교는 졸업하면 곧바로 초등학교 교사가 되는 학교인데 오늘날 없어진 학교로 교육대의 전신이다. 공주에도 그런 학교가 있어서 나는 어렵게 시험을 치르고 합격했다.
시험은 3차까지 까다로웠다. 며칠 동안 시험을 치렀는데 아버지가 따라와 뒷바라지를 해주셨다. 합격자 발표가 나던 날, 합격자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니 이미 버스가 끊긴 뒤였다. 하는 수 없이 택시를 타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 결국 서천 방향으로 가는 여학생 두 사람과 그들의 아버지를 알아내고 아버지와 내가 그들과 동행하기로 했다.
합승한 여학생 옆모습에 반해
시발(始發)택시. 산업화가 이뤄지기 이전에 만들어진 한국 최초의 택시라서 마치 지프처럼 생긴 차였다. 그 좁은 차 안에 여학생 둘과 그들의 아버지 둘, 남학생인 나와 우리 아버지, 운전기사까지 일곱 명이 탔다. 당연히 어린 학생의 자리는 뒷자리. 내가 가에 앉고 그 옆으로 두 여학생이 앉았다. 그때만 해도 남학생과 여학생은 서로가 말을 주고받지 않던 시절이다. 나는 동급생보다 한 살이 어려 더욱 여학생들 앞에서 수줍음을 타는 아이였다. 하지만 택시 안이 좁다 보니 거리를 두고 앉을 수도 없고 그냥 그대로 꾸겨진 종이처럼 구석 자리에 처박혀 견디는 도리밖에 없었다.
곁눈질로 보니 바로 옆자리에 앉은 여학생의 얼굴이 해사하고 동그스름하니 예뻤다. 비포장도로를 달려 자동차가 덜컹거릴 때마다 나의 가슴도 덜컹거리며 뛰었다. 공주에서 부여를 거쳐 서천까지 그렇게 덜컹거리며 가기를 두어 시간, 자동차는 해가 지는 쪽으로 달리고 달렸다. 나는 마치 내가 탄 자동차가 마법의 성으로나 가는 듯 신비한 마음에 눈을 감고 있었다. 어둠이 깔릴 때 서천 가까운 곳에 다다라 아버지와 나는 그 자동차에서 내렸다.
후유 한숨을 내쉬었지만 조금은 섭섭했고, 옆자리에 있던 여학생의 옆얼굴이 가슴에 남아 지워지지 않았다. 그것은 영혼의 향기 같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운명적인 만남이었을까. 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도 나는 그 여학생의 모습을 찾아 헤매는 아이가 됐다. 아예 학교 공부는 뒷전이었다. 무언지 모르겠지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솟아오르는 뭉근한 마음이 문제였다. 가슴이 답답하고 불편했다.
3년간 속앓이…그 덕에 시 공부
어떻게 하든지 그 뭉근한 마음을 밖으로 꺼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냥 놔두면 내가 죽을 것만 같았다. 거기서 정말로 어설프게 시작한 것이 나의 시 쓰기 공부였다. 누가 알려주거나 거들어 준 일도 아니다. 학교 공부는 집어치우다시피 하고 오로지 시집을 찾아 읽고 공주 시내에 있는 고서점을 돌며 낡은 문학잡지를 뒤적이고 거기에 있는 시들을 베끼며 시 비슷한 글을 쓰면서 3년을 보냈다.
그것은 오로지 합격 발표가 있던 날, 공주에서 서천까지 시발택시를 타고 함께 간 여학생이 준 엉뚱한 선물이었다. 하지만 나는 공주에서 학교 다니던 3년 동안 그 여학생을 직접 만난 일이 없고 오직 멀리서만 까치발을 딛고 바라보면서 지냈다. 그러니 그 여학생이 나를 기억할 까닭도 없고 또 자기를 내가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 일이었다. 오로지 그것은 나 혼자만의 비밀스러운 의식 같은 것이었다.
정말로 그렇게 나의 고등학생 시절 3년은 한 여학생을 멀리서 좋아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그 대신 나는 시인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가득한 아이가 됐다. 누가 짐작할 수 있었으랴. 초등학교 선생 기르는 학교에서 시 쓰는 공부만 하면서 3년을 허송하다니! 정말로 그것은 돌연변이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세상의 일, 사람의 일이란 비밀이 없는 법. 아무리 숨기고 숨겨도 세상에 알려지게 마련이다. 1971년 시인으로 데뷔하고 나서 수없이 많은 시를 쓰고 또 산문을 써서 책으로 내는 과정에서 이런 얘기가 밖으로 나갔을 것이다. 그걸 또 눈여겨 알고 기억해 준 사람이 있었다.
C여사라고, 역시 나하고 공주사범학교 동창인데 책 읽기를 특별히 좋아하는 분으로 내 책을 읽는 과정에서 숨겨진 이야기를 알았던가 보다. 이분이 어느 날 제안을 해왔다. 내가 3년 동안 바라만 보면서 말 한마디도 건네지 못한 첫사랑의 그 여학생을 만나도록 주선해 주겠노라고.
한동안 뜸을 들이다가 몇 해 전 어느 날, 서울에서 만나기로 하고 약속 장소에 나갔다. 장소는 서울 잠실의 한 백화점 식당. 열정적인 C여사가 먼저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그다음에 나가고, 시간에 맞춰 내가 그토록 3년 동안 멀리서만 바라보며 가슴을 태우던 S여사가 또 다른 여자 동창과 함께 나왔다.
기억 속의 소녀와 백발의 그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안녕하십니까?” 그러나 S여사는 인사말도 제대로 받지 않고 엉뚱한 말로 대꾸했다. “내가 이렇게 머리가 하얗게 백발이 됐는데…” 그리고는 뒷말을 흐렸다. 과연 S여사는 백발의 노인이었다. 외모도 조그만 여자 노인이었다. 내 기억 속의 그 소녀와는 전혀 닮아 있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음식을 시켜 함께 식사를 했다.
식사 시간에 나는 다시 한번 S여사에게 말을 걸었다. “혹시 지금 서천에는 누가 사시나요.” 그러자 이번에도 엉뚱한 대답이 왔다. “서천에 대한 생각, 이제는 다 잊어버렸습니다.” 아, 이것은 또 무슨 의미의 말일까. 어쩌면 그것은 고향 얘기, 어렸을 적 얘기를 꺼내지도 말라는 암시가 아닐까. 그날의 만남, 그날의 식사 모임은 그것으로 허망하고 무의미하게 끝이 났다. 물론 밥값은 내가 냈지만 말이다.
그 뒤로 젊은 독자들을 만나면 곧잘 말해주곤 한다. 첫사랑의 그 사람은 만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좋다고. 그 마음의 자리, 그날의 모습 그대로 간직해 두는 것이 훨씬 아름다운 일이라고. 그래도 나는 나를 시인의 길로 이끌어 준 S여사에 대해 고맙고 감사한 마음을 여전히 간직하며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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