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에서 본 기후위기, 무력감에서 행동으로[기고/오영식]

2 weeks ago 11

오영식 남극 세종기지 제28·38차 월동연구대원 나는 2014년 12월 ‘대한민국 남극 세종과학기지 월동연구대’ 대기과학 대원으로 남극에 첫발을 내디뎠다. 당시 부두에서 기지로 올라오는 길가에는 눈이 높게 쌓여 있었고, 겨우 뚫은 길도 눈 녹은 물로 질퍽했다. 그러나 10년 뒤, 같은 시기에 다시 찾은 그곳에서 내가 발견한 것은 눈이 아니라 말라붙어 마치 사막 같은 맨땅이었다. 숫자는 이러한 변화가 체감만이 아님을 보여준다. 2014년 내가 측정한 세종기지 주변의 이산화탄소 농도는 400ppm이었다. 이는 장비의 오류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로 높은 수치였다. 당시 학계 역시 인류 역사상 처음 겪는 상징적인 수준이라며 떠들썩했다. 그러나 10년 후 다시 측정한 수치는 430ppm에 이르렀다. 숫자만 보면 작은 차이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빙하 속에 보존된 과거 대기의 자연적 변동과 견줄 때 비정상적으로 가파른 상승이다. 변화는 우리 곁에도 성큼 다가와 있다. 5월 중순, 여름이 시작되기도 전에 낮 기온이 30도 중반까지 치솟으며 전국 곳곳에서 동 시기 최고기온 기록이 깨졌다. 장마와 폭염이 비교적 뚜렷하게 구분되던 한국의 여름은 이제 국지적 극한 호우와 폭염이 반복되는 ‘우기형 여름’의 양상을 띤다. 주로 봄철 동해안을 중심으로 발생하던 대형 산불도 계절과 지역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남극에서 내가 본 풍경과 한국에서 우리가 겪는 이상기후는 서로 다른 장면처럼 보이지만, 결국 같은 기후 시스템의 변화 속에 놓여 있다. 이러한 현실 앞에서 많은 사람이 무력감을 느낀다. 이상기후가 반복될수록 사람들은 재난의 규모에 압도되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너무 작아 보인다. 특히 청년 세대는 기후위기를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미래를 흔드는 불안으로 경험하고 있다. 문제의 크기와 개인의 힘 사이의 간극이 커질수록 불안은 쉽게 무기력으로 바뀐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에게는 공포의 언어만이 아니라 행동의 언어가 필요하다. 기후위기는 누구도 혼자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다. 하지만 공동체 안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기후위기를 생활의 언어로 번역하고, 함께할 수 있는 규모의 실천으로 바꿀 때 사람들은 비로소 움직일 수 있다. 나는 이 점을 로타리클럽에서 집수리 봉사활동을 하며 깨달았다. 집수리는 얼핏 보면 취약계층을 돕는 봉사활동으로만 보이지만,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보면 훌륭한 기후행동이다. 단열이 취약한 집을 보강하는 일은...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