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잼 도시’엔 빵만 있다고?… 편견 깰 칼칼한 두부두루치기[김도언의 너희가 노포를 아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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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중구 선화동 광천시장의 대표 메뉴 ‘두부두루치기’. 2인 기준 1만6000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대전 중구 선화동 광천시장의 대표 메뉴 ‘두부두루치기’. 2인 기준 1만6000원이다. 김도언 소설가 제공

김도언 소설가

김도언 소설가
대전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미안하게도 다른 지역 사람들은 대전을 ‘노잼(재미없는) 도시’라고 말한다. 도무지 고유한 풍속이나 전통 같은 것을 찾을 수 없는 도시라고 혹평하는 이도 있다. 대전은 일제강점기에 철도가 전국적인 교통망으로 확장되면서 만들어진 계획도시다. 그래서일까. 오랜 세월 유구하게 쌓인 도읍만의 색채가 희미한 게 사실이다.

대전을 대표하는 음식으로는 칼국수와 두부두루치기를 꼽을 수 있다. 칼국수와 두부 요리는 워낙에 전국적으로 일반화된 음식이다 보니 한 도시를 대표하는 음식이라고 하기엔 어딘지 좀 옹색한 면이 있다. 이를테면 춘천의 막국수, 영광의 굴비 정식, 안동의 찜닭, 마산의 아귀찜, 여수의 갓김치 같은 아이코닉한 음식들과 비교하면 이 옹색함은 더욱 두드러진다.

광천식당은 두부두루치기 맛집으로 명성이 자자한 대전의 대표적 노포다. 대전 중구 선화동 중앙로역 사거리 골목에서 3대를 이으며 50년 가까이 장사를 하고 있다. 주거용 건물을 식당으로 개조해 내부 구조가 상당히 아기자기한데, 이것은 노포의 사회학이 보여주는 공통적인 특징으로 보는 게 맞다. 대개의 노포는 작은 규모로 시작하다가 명성이 쌓여가면서 늘어나는 손님들을 수용하기 위해 조금씩 업장을 늘린다. 그렇다 보니 구조가 미로처럼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서울의 평양냉면 명소 을밀대가 대표적이다.

2인 기준 1만6000원인 두부두루치기는 일단 새빨간 색깔과 푸짐한 양이 식객들의 두 눈을 사로잡는다. 멸치 육수를 기본 베이스로 하면서 고춧가루와 대파, 다진 마늘을 아끼지 않고 넣어 칼칼함을 극한까지 끌어올렸다. 광천식당은 우동 사리를 따로 파는데 두부를 먹고 남은 양념에 면을 넣고 비벼 먹는 것이 이곳 단골들의 풍습이다. 땀과 눈물이 배어 나올 정도로 얼얼한 양념에 부드러운 두부살과 졸깃한 면 사리의 조합도 훌륭하다. 거기에 진한 멸치 국물로 입가심하면 그 풍미가 꽤 오래 남는다. 돌아서면 바로 생각나는 중독적인 맛이랄까.

충성도 높은 단골 식객들과 외지 방문객들까지 몰리다 보니 피크타임 때는 30여 분 줄을 서는 건 기본이다. 그런데 자리가 나서 앉기만 하면 주문한 음식이 5분 안에 나와서 웨이팅의 피로가 단번에 풀린다. 접객 서비스에 전통만큼이나 노련한 효율성과 노하우가 확인되는 순간이다.

대전은 어쩌다 두부두루치기의 도시가 됐을까. 여러 텍스트를 살펴보고 설문도 해봤지만 정설을 찾기 어려웠다. 다만 설득력 높은 추론은 있다. 앞에서 썼듯 대전은 교통 요지로 개발된 도시로 경부선과 호남선이 갈리는 곳이다. 그렇다 보니 외지인들이 출장차 들르거나 쉬어가는 기착지인데, 대전 인근에는 특별한 산물이랄 게 없다. 그래서 대전의 요식업자들은 까탈스러운 외지인들의 입맛에 가장 무난할 법한 식재료를 찾았을 것이다. 그게 바로 남녀노소가 다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없는 두부가 아니었을까. 대전의 칼국수가 유명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테다. 특별할 자신이 없으면 무난한 것을 택하는 것이 삶의 지혜라는 것을 대전 사람들은 알고 있었던 셈이다.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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