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베네수엘라 사태, 세계질서 전환 신호탄인가

1 month ago 13

[다산칼럼] 베네수엘라 사태, 세계질서 전환 신호탄인가

미국의 베네수엘라 공습과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 부부 압송, 베네수엘라산 석유 장악, 노골적인 그린란드 병합 압박 등은 세계 질서가 큰 전환기에 처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냉전 종식 이후 확립된 글로벌 자유무역 질서는 이미 도널드 트럼프 1기 행정부의 세계무역기구(WTO) 불신에 의해 와해되기 시작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된 다자 간 합의에 기반한 글로벌 안보 질서마저 이제 붕괴 위기에 직면했다.

물론 지나친 우려일 수 있다. 임기가 정해진 미국 대통령제하에서 트럼프가 떠나고 나면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다. 그러나 트럼프 1기 후 들어섰던 조 바이든 민주당 정부는 결코 글로벌 무역 질서의 복원을 시도하지 않았고, 지금도 공화·민주 양당은 ‘중국 때리기’(China bashing)에 이견이 없다. 이를 감안하면 다자주의 세계 질서가 복원될 것이라는 기대는 순진한 생각일 뿐이다.

지난해 말 발표된 미국 국가안보전략(NSS)에서 트럼프 부칙(Trump Corollary)은 타지역 국가가 미주 지역의 전략적 자산, 항구, 통신망 및 에너지시설을 통제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겠다고 못 박았다. 이에 가장 뚜렷하게 해당하는 타지역 국가는 무역, 투자, 금융지원 등 모든 면에서 영향력을 넓혀온 중국이다. 중국 정부는 2013년부터 유라시아 및 아프리카 지역에 제공하던 일대일로(BRI) 인프라 개발 금융지원사업을 2018년부터는 공식적으로 중남미 지역에 개방하기 시작했다. 이 지역 20여 개국이 BRI 협정에 서명했다. 남미 국가들 입장에선 중국이 최대 수출 대상국인 터라 중국의 자금 지원을 활용해 수출 기반 시설 등 인프라를 확충할 기회를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2024년 말 페루 찬카이에 준공된 남미 최대 항만시설이 대표적 사례다. 2025년 트럼프 2기 정부 출범 직후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첫 행선지로 파나마를 택해 BRI 탈퇴와 홍콩계 항만회사가 운영 중인 주요 항만시설의 미 자산운용사로의 매각을 압박한 배경이다.

마치 1980년대 미국 경제가 일본의 추월 위협에 놓였을 때 미국이 플라자합의를 통해 일본의 기세를 꺾었듯이,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의 부상으로 직접적인 위협을 받는 미주 지역부터 손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단기적으로는 마약 거래 차단, 베네수엘라산 원유 확보와 정유업계 활성화를 통한 유가 인하를 유도해 추락한 지지도를 회복하고 올 11월 중간선거에서의 승리를 통해 정권 안정을 도모할 것이다. 그러나 미국의 전략적 목표는 중국 이권 퇴출, 베네수엘라 원조에 의존해온 쿠바 정권 종식, 콜롬비아와 브라질의 현 좌파 정부에 대한 경고 등이다. 그린란드 병합 시도 역시 현재 중국이 장악한 세계 희토류 시장 판도를 바꿀 변수가 된다는 점에서 미국의 대중 견제 구도로 이해해야 한다.

우려스러운 것은 루비오 장관이 지난해 취임 직후 인터뷰에서 “냉전 종식 후 형성된 일극 체제는 비정상이며, 다극 체계로의 회귀가 지정학적 중력의 자연스러운 작용”이라고 밝힌 논리와 금번 NSS가 맥을 같이 한다는 점이다. 미국이 세계 지역별로 패권자의 존재를 수용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최근 뉴욕타임스 보도처럼 러시아가 과거 미국에 우크라이나·베네수엘라 교환 제의를 한 것이 사실이라면 트럼프의 러시아·우크라이나 평화 계획이 우크라이나보다 러시아 입장을 명백히 반영하고 있음을 새삼 확인케 한다. 즉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인 유럽 국가에 안보를 스스로 책임지라든가, 그린란드 자치령을 영유하는 나토 회원국 덴마크를 압박하는 미국의 행태는 2차 세계대전 이전 제국주의 시대 강대국의 논리를 연상하게 한다.

세계가 진정 지역별 패권 질서로 회귀한다면 동아시아의 안보는 중대한 도전을 맞을 수밖에 없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서 정확한 전략적 선택을 하라”고 압박하고, 트럼프는 ‘FAFO’(까불면 죽는다는 뜻의 비속어)를 소셜미디어에 올리며 양자택일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는 어느 일방도 포기할 수 없다. 국익에 따라 둘 다 취하는 지혜와 실용적 전략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 외교의 ‘전략적 자율성’이 시험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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