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석화 구조재편, 골든타임 놓쳐선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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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석화 구조재편, 골든타임 놓쳐선 안된다

음수사원(飮水思源). 물 마실 때 그 근원을 떠올리며 감사하라는 뜻이다. 최근 중동 전쟁 여파로 일각에서 종량제 봉투 사재기 현상이 벌어졌다. 평소 무심코 쓰던 쓰레기 봉투의 ‘근원’이 바로 나프타다. 나프타는 조선·자동차·식품·농업·건설 등 기간산업의 구조를 지탱하는 필수 요소다. ‘산업의 쌀’ 나아가 ‘산업의 산업’이라고 불리는 이유다.

전쟁으로 나프타가 일시 품귀를 빚고 있지만 글로벌 석유화학 시장은 구조적 공급 과잉 상태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을 발판으로 생산능력을 대폭 확충했다. 중국도 지난 10년간 나프타 설비를 공격적으로 증설했다. 중동 산유국도 원유에서 곧바로 화학제품을 만드는 ‘COTC(crude oil to chemical)’ 체제를 구축했다. 국내 역시 과도한 생산능력을 안고 있다. 지난 수년간 중국 수출을 전제로 공장을 확장한 결과다. 지금은 상황이 역전됐다. 중국의 저가 공세로 국내 석화업계 채산성이 급격히 악화됐다. 2022년 이후 석화업계 영업이익은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여수·대산·울산 등 3대 석화단지를 중심으로 지역경제 침체가 심하다. 예컨대 전남 여수 국가산업단지의 법인지방소득세는 2022년 1306억원에서 2024년 385억원으로 70% 급감했다. 대통령이 석화산업의 신속한 구조 재편을 주문한 배경일 것이다.

정부 주도 구조 재편의 핵심은 두 가지다. 과잉설비 감축과 고부가가치·친환경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전환이다. 스페셜티 제품 전환은 연구개발(R&D) 축적이 필요한 만큼 시간이 걸린다. 생산능력 감축부터 서두르는 이유다. 최근 구조조정에 속도가 붙었다. 충남 대산과 여수 산단 나프타분해설비(NCC)에서만 약 250만 t의 공급능력이 줄어들 전망이다. 앞으로 여수와 울산까지 재편이 마무리되면 감축 규모는 430만 t을 넘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 목표(최대 370만 t)를 웃도는 수준이다.

정부의 지원 의지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대산 1호 프로젝트’는 기업의 애로를 구체적으로 짚고 맞춤형 지원 패키지를 제시했다. 채권금융기관 임직원의 면책 조치 역시 구조조정을 촉진하는 실질적 유인으로 평가된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어떤가. 사업 재편 과정에서 기업이 체감하는 걸림돌은 여전히 크다. 24시간 설비를 돌려야 하는 석화산업에 전기료는 ‘초크 포인트’다. 더욱이 사업부문 분리에 반대하는 주주가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면 대규모 현금 유출이 불가피하다. 손자회사 규제에 따른 공동 출자 제한 역시 합작회사 설립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이다.

일본 정부는 아예 구조조정법까지 만들어 대응했다. 1980년대부터 법적 지원(특정산업구조개선임시조치법, 산업활력재생특별조치법)을 통해 노후·중복 NCC를 통합하고 석화산업의 스페셜티 전환을 촉진했다. 국내 석화산업도 설비 감축으로 고정비 부담이 줄면 R&D 투자에 나설 역량을 갖추게 된다. 이는 스페셜티 제품으로의 체질 전환과 경쟁력 강화로 직결될 것이다. 한국은행은 향후 3년간 연평균 3.5% 수준의 R&D 투자가 유지될 경우 구조 재편에 따른 단기 성장 둔화는 충분히 만회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NCC만 무조건 줄이는 접근은 경계해야 한다. 스페셜티로의 지나친 쏠림은 또 다른 취약성을 안고 있다. 최근 중동 전쟁과 2021년 중국의 요소(尿素) 수출 제한 조치는 공급망 위기가 언제든 현실화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NCC 가동이 멈추면 자동차·가전·건설·유통 등 산업 전반으로 공급 부족이 확산된다. 특히 수액백·주사기 등 필수 의료재 공급 차질은 치명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국내 수요를 감당할 범용 생산능력은 국가전략산업 차원에서 일정 수준이 유지돼야 한다.

관건은 범용과 스페셜티 간 균형이다. 이를 지역·산업별로 조화롭게 재배치하는 것도 중요 숙제다. 정부와 기업의 상호 협력이 필수다. 일부 기업에 국한된 구조조정은 산업 재편의 동력을 훼손할 수 있다.

우리나라 석화산업은 고부가 첨단 소재산업으로 도약할 중대 전환점에 서 있다. ‘제2의 반도체산업’으로 성장할 잠재력도 갖추고 있다. 정부와 업계가 함께 변화를 이끌어낼 골든타임이다. 놓쳐선 안 된다. 시간이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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