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쿠바 '레짐 체인지' 과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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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칼럼] 쿠바 '레짐 체인지' 과연 가능할까

미국·이란 종전 협상이 마무리된다고 해도 세계는 평화보다 ‘다음 차례’에 더 주목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쿠바 정권 붕괴’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트럼프는 지난 1월 “베네수엘라에 민주주의를 회복시켰다”고 자랑했지만 실상은 기존 집권세력을 그대로 둔 채 석유 이권만 챙기는 데 그쳤다. 이어 이란 최고 지도부를 몰살시키면서도 신정체제 종식과 시민혁명을 시사했으나 작금의 협상 역시 기존 핵 협상과 크게 다르지 않다.

쿠바는 1959년 혁명 이후 미국의 경제 봉쇄와 제재를 극복하고자 소련, 베네수엘라, 중국 등에 차례로 의존했다. 후견국이 갑자기 사라지는 ‘특별 시기’엔 관광산업 개방, 외자 유치, 자영업 허용 등 이상주의와 실용주의 노선을 오가며 버텼다. 최근엔 외화벌이를 위해 의사와 교사, 군 정보요원 등 인력을 대거 수출해왔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의 압송 당시 미국 특공대와 교전 중 숨진 32명의 쿠바인 경호원이 대표적이다.

다만 미국이 쿠바에 군사력을 사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베네수엘라와 이란은 선거 부정, 인권 침해, 핵 개발 등을 이유로 미국 외에도 다수 국가 및 국제기구로부터 제재를 받았다. 반면 쿠바를 제재하는 국가는 미국이 유일하다. 매년 유엔총회에는 미국의 대쿠바 봉쇄 해제 촉구 결의안이 상정돼 압도적 찬성으로 통과된다. 한국 역시 1999년 이후 이 결의안에 찬성표를 던지고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마두로를 마약, 테러, 돈세탁 등 혐의로 기소해 압송을 정당화했지만, 쿠바 지도부에 대해선 아직 조사나 명분 쌓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트럼프가 사용한 ‘우호적 장악(friendly takeover of Cuba)’이란 표현도 무력 충돌 없는 합의형 정권 교체로 해석된다. 그 임무는 쿠바계 이민 2세로 미국 대선 후보까지 오른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이 맡고 있다. 그는 베네수엘라 작전 직전 마두로 이후 국정 운영에 관해 델시 로드리게스 부통령과 비밀 합의를 이뤄낸 인물이다. 쿠바 측과도 물밑 접촉을 벌이고 있다. 트럼프와 루비오는 제재·석유 봉쇄·군사적 압박으로 쿠바를 몰아붙여 “우리가 체제를 흔들었다”는 서사를 오는 11월 미국 중간선거에 활용하는 게 목표다. 새 쿠바 정부가 친시장적이기만 한다면 망명 쿠바인 1세대가 꿈꾸던 완전 복고와 민주화까진 아니더라도 외교적 승리로 충분히 포장할 수 있다.

미겔 디아스 카넬 쿠바 대통령도 호응하는 모양새다. 지난 3월 교황청과 합의해 정치범 51명을 석방한 데 이어 이달 초 부활절 특사로 2010명의 대규모 사면을 단행했다. 쿠바는 이번 사면이 인도주의에 입각한 주권적 결정이라고 강조했으나 미국의 압박이 거세진 상황에서 나온 터라 미국도 이를 쿠바의 유화 제스처로 수용하는 듯하다. 쿠바에서는 실권자인 카스트로 가문의 2, 3세대가 공식·비공식 협상 채널을 주도한 것으로 전해진다. 대통령 퇴진과 정치범 석방, 체제 개혁이라는 미국 측 요구와 제재 완화 및 카스트로 가문의 안전 보장 등 쿠바 측 조건이 협상 테이블에 오른 분위기다. 쿠바 정권이 현 위기를 또 다른 ‘특별 시기’로 대응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 러시아 등 제3국의 움직임도 관건이다. 중국은 산티아고 항만 현대화, 통신 인프라, 결제시스템 연계 등 쿠바에 깊이 관여해 왔다. 쿠바 내 네 곳에 전자정보 수집 기지와 레이더 시설 등을 건설·확장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지는 미국 남동부 연안과 관타나모 해군기지의 군사 통신을 감청할 수 있어 대만 해협 유사시 중국의 정보전 역량을 뒷받침할 수 있다. 중국이 미국과 쿠바 간 협상을 주시하는 만큼 다음달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의제로 다뤄질 가능성이 있다.

양측 간 협상은 트럼프와 루비오에게 선거용 정치자산이며, 쿠바 집권 세력에는 지배구도 연장을 위한 출구전략이자 에너지와 식량 위기를 끝낼 정치적 기회로 볼 수 있다. 중국으로서 쿠바는 대만 문제에 대한 전략적 포석이다. 이들 간 이해관계가 얽히는 한 쿠바도 진정한 ‘레짐 체인지’로 이어지기 어렵다. 트럼프식 쿠바 해법이 2014년 버락 오바마와 라울 카스트로 간 국교 정상화 방안을 넘어설 수 있을지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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