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안 산수를 들이고, 뜰에 돌을 놓다… 일상에 깃든 ‘와유’의 풍경[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5 hours ago 2

집에 산수화 걸어두고 자연 즐겨… 와유는 사유-예술 통한 간접 감상
동아시아 와유 문화의 핵심은 돌… 조선 ‘괴석도’, 日 석정원 등 인기
주변 산수와 어우러진 ‘인지제의’… 한국식 조경의 두드러진 특징 돼

1872년 건립된 중국 항저우 ‘호설암 고택’. 내부 정원 ‘지원(芝園)’의 괴석과 저택이 잘 어우러진다. 착착건축사사무소 제공

1872년 건립된 중국 항저우 ‘호설암 고택’. 내부 정원 ‘지원(芝園)’의 괴석과 저택이 잘 어우러진다. 착착건축사사무소 제공
《동아시아의 자연 감상법, 와유

벚꽃이 지고 나무에 연녹색 잎이 빛을 내며 반짝이는 시기가 왔다. 평범했던 집 주위의 풍경은 봄볕을 받으면서 마법처럼 빛난다. 아무리 계절과 주변에 무감각했던 사람들도 각종 꽃이 이어서 피는 봄이 되면 잠시라도 바람과 풍경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오래전부터 동아시아에는 자연을 직접 경험하는 방식을 넘어서, 사유와 예술로 자연을 더욱 깊고 가깝게 느끼려고 하는 흐름이 있었다. 이런 간접적인 자연 감상의 방식을 ‘와유(臥遊)’라고 한다.》

김대균 건축사·착착건축사사무소 대표

김대균 건축사·착착건축사사무소 대표
와유에서 와(臥)는 편하게 ‘눕다’라는 뜻이고, 유(遊)는 ‘즐기다’라는 뜻이다. 직역하면 ‘편하게 누워서 즐기다’라는 의미가 된다. 불상 중에서도 누워 있는 모습을 한 ‘와불’은 열반의 경지에 다다른 궁극의 평온함을 뜻한다. 요즘 방송에서 이른바 ‘눕방’(출연자가 누워서 하는 방송)이 일정 부분 공감을 얻는 것도 긴장하지 않는 편안함이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느슨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와유는 중국 위진남북조 시대에 활약한 산수화가 종병(宗炳·375∼443)에 의해 생겨난 개념이다. 종병은 산수 자연을 일상적으로 경험하는 것을 통해 도를 깨달아야 한다고 여겨 일생 동안 벼슬을 하지 않고 각지의 명산을 돌아다녔다. 그는 글과 그림에 매우 뛰어났는데, 노년에는 형산에 기거하면서 그동안 다닌 지역의 산수화를 걸어 두고 자연을 즐겼다. 이후 와유는 자연과 정신적으로 교감하는 대표적인 방식이 됐다. 이어 11세기 북송을 거치며 동양 산수화의 기본 개념이 됐다.

유교의 삶은 사회적으로 바른 역할을 하는 인간과 자연과 함께하는 소박한 삶을 동시에 이상향으로 여긴다. 이는 도시와 전원의 생활을 동시에 취할 수 없는 현대인의 모순과 유사하다. 여기서 와유는 이상향으로서의 자연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방식이다.

한문학자인 이종묵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와유의 유형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와유의 첫 번째 방식은 산수화를 즐기는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휴대전화로 찍어서 다시 보는 것과 유사할 수 있지만, 산수화는 가볼 만하고(可行), 바라볼 만하고(可望), 자유로이 노닐어 볼 만하고(可遊), 살아볼 만한(可居) 풍경을 그려야 한다. 산수화를 보는 감상자 역시 이 네 가지를 살펴야 한다. 산수화를 통해 이상향의 모습을 한 자연을 상상하고, 그 안에서 나의 생활을 대입하면서 자연에서의 삶의 방식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는 것이다.

두 번째 방식은 집에 식물이나 돌을 이용해 정원을 만드는 것이다. 특히 기괴한 모습을 한 돌(怪石·괴석)을 이용해 인공적인 산의 풍경을 만드는 ‘가산(假山)’은 전통적으로 동아시아에서 크게 번창했다. 예로부터 돌은 자연의 기운이 깃든 영적 존재로 여겨졌다. 또한 돌이 지닌 불변성은 장수를 상징한다. 지금 우리가 ‘수석’이라 하는 것에서 수(壽)는 목숨을 뜻한다. 중국에서는 수당 시대부터 본격적으로 괴석을 즐겼다. 특히 중국 쑤저우 인근 ‘태호’라는 호수 주변의 언덕이나 섬에 있는 ‘태호석’을 최고로 여겼다. 태호석은 검고 여러 곳에 구멍이 뚫려 복잡한 형태를 지녔다. 한국도 규모와 방식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괴석을 통해 자연의 오묘함을 감상하려는 문화는 유사했다. 괴석을 즐기는 방식으로는 정원에 가산을 만들거나 괴석을 별도로 심어 감상하는 법도 있지만, 화분처럼 방 안의 받침 위에 돌을 올리고 이끼나 작은 식물을 심어 감상하는 방식도 있다.

일본 교토 료안지의 돌 정원. 물 없이 바위와 모래로 산수를 표현한 가레산스이(枯山水) 양식을 보인다. 착착건축사사무소 제공

일본 교토 료안지의 돌 정원. 물 없이 바위와 모래로 산수를 표현한 가레산스이(枯山水) 양식을 보인다. 착착건축사사무소 제공
19세기 조선에서는 괴석의 묘한 아름다움을 그린 ‘괴석도’ 감상이 유행했다. 일본에서는 식물이나 물 없이 돌과 모래, 자갈 등을 이용해 정원을 조성하는 독특한 방식이 자리 잡았다. 이를 ‘고산수 정원’ 또는 ‘석정원’이라고 부른다. 정원을 조성하는 작정(作庭)의 차이는 있지만, 동아시아에서 돌은 와유 문화의 핵심이었다.

와유의 세 번째 방법은 산수를 유람하면서 쓴 기행문을 읽는 것이다. 지금에 비유하면 여행 블로그를 읽는 것과 유사하다. 특히 조선 중기에 산수 유람이 크게 유행하면서 여행의 기록을 모아 만든 책 ‘와유록(臥遊錄)’이 발간됐다. 와유록은 산수 유람의 안내서 역할을 하고, 동시에 그곳을 갈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와유할 수 있는 방식이 됐다.

서울 종로구 한 한옥의 석정원. 한옥 한 칸 크기의 큰 바위를 축대로 같은 재질의 돌과 마사를 깔아 한국식 조경을 구현했다. 착착건축사사무소 제공

서울 종로구 한 한옥의 석정원. 한옥 한 칸 크기의 큰 바위를 축대로 같은 재질의 돌과 마사를 깔아 한국식 조경을 구현했다. 착착건축사사무소 제공
얼마 전 경복궁 인근의 매우 작은 한옥을 리노베이션했다. 이 한옥은 좁은 골목을 지나 꽤 가파른 언덕에 위치해 있다. 마당에는 한옥 한 칸 정도 되는 거대한 바위가 축대 역할을 하고 있다. 한옥 마당을 계획할 때 생각한 것이 석정원이었다. 일본 석정원은 주변과 관계없이 담장 내부에 독립적으로 만들어지는 반면, 이 정원은 원래 있던 큰 바위와 같은 재질의 돌 세 개를 함께 놓고 마당 전체에 굵은 마사를 깔아 조성했다. 주변 산수를 고려해 적절하게 만드는 방법을 ‘인지제의(因地制宜)’라고 하는데, 이는 한국 조경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크지 않은 공간에 튀는 느낌이 있었던 큰 바위는 작은 바위들과 함께 한옥과 하나가 됐다. 누군가 이 집에 살며 누마루에서 와유하는 모습이 기대된다.

김대균 건축사·착착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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