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제 안 읽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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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이제 안 읽을 수가 없다

진은숙은 동시대 최고 작곡가로 인정받고 있다. 그는 2024년 세계 클래식 음악계 노벨상으로 불리는 ‘에른스트 폰 지멘스 음악상’을 수상했다. 작곡과 지휘, 기악, 성악을 가리지 않고 단 한 명에게 시상하며 단순한 인기와 테크닉이 아니라 인류 문화에 얼마나 깊이 기여했는지를 두고 심사위원들의 만장일치로 뽑는 상이다.

올해는 체코 프라하의 봄 국제 음악 축제의 상주 작곡가로도 선정됐다. 그는 유럽에 40년간 살았지만 체코와는 인연이 없었다. 그런데도 낯설지가 않았다고 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등을 비롯해 체코 출신 문학 거장 밀란 쿤데라 책을 대부분 읽은 것이 체코 문화와의 거리를 좁혀줬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지의 길을 걷는 힘의 원천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평가받은 ‘불사대마왕’ 페이커(이상혁)도 독서광이다. 페이커는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죽음의 수용소에서> <인스타 브레인>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등을 읽으며 평정심을 찾았다.

‘쇼트트랙 레전드’ 최민정은 밀라노·코르티나담페초 동계올림픽 대회로 향하는 비행기에서 반야심경을 바탕으로 쓴 철학서 <건너가는 자>를 읽었다. 세계 톱클래스 선수들과 맞붙어야 하는 부담과 압박을 책으로 이겨냈다고 한다.

미지의 길을 걷는 힘의 원천으로 책을 읽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느냐만은 인공지능(AI) 시대에 이들의 모습은 독서하는 이유가 완전히 바뀌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제미나이와 챗GPT를 이용하면 어떤 지식이든 수초 만에 알 수 있으니 독서는 지식 습득 도구로서 위상을 거의 잃어버렸다. 그 대신 통찰력과 회복탄력성을 기르는 유일무이한 무기가 됐다. 지식 노동자의 독서보다 문화체육계 스타의 독서가 더 관심을 끄는 이유다.

오는 24~28일 코엑스에서 열리는 서울국제도서전 주제가 인간선언으로 잡힌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이다. 도서전은 한국 문헌에 등장하는 도깨비의 원형 두두리를 불러왔다. 두두리는 대장장이의 옛 이름이다. 불은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지만 불을 다루는 슬기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는 문명의 이기가 된다. AI를 다루는 슬기를 어디서 찾을 것인가. 책밖에는 없다.

생존의 문제로 떠오른 독서

서울국제도서전 서문은 말한다. “AI는 가장 확률이 높은 답으로 가능성의 문을 닫는다. 인간은 더 큰 질문으로 그 문을 다시 연다. 인류의 사유가 매번 한 걸음씩 더 넓은 세계로 나아간 것은 확률이 가리키는 답이 아니라 그 답 너머를 향한 질문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위대한 질문들의 기록이 바로 책이다.”

서울국제도서전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지난주 닷새간 판매한 ‘얼리버드’ 티켓(50% 할인)은 매진됐다. 얼리버드 표를 사려는 대기 수요가 한때 수만 명에 달했다. 도서전 전체 기간 자유롭게 행사장을 찾을 수 있는 6만6000원짜리 ‘두두리 패키지’도 완판됐다.

18개국 530여 개 출판사가 참여하는 국내 최대 출판 이벤트라는 점도 인기의 이유겠지만 책을 가까이 하려는 인구가 그만큼 늘어나고 있다는 얘기다. 다행이다. AI 시대에 독서는 취미가 아니다. 생존의 문제다. 이제 모두가 알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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