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식 ‘약탈적 패권’, 공포 외교 역설 드러내
TACO 확산, 협박 잦아질수록 억지력 무너져
호르무즈 선례 해상 질서 ‘무기화’ 위험 키워
동맹 흔드는 참전 압박 시험대 오른 한국 외교
2026년 4월 7일 밤, 트럼프는 한 문명 전체가 오늘 밤 사라질 것이라는 종말론적 트윗을 올렸다. 약탈적 패권의 문법은 단순하다. 공포를 생산하고, 그 공포를 화폐처럼 유통시켜 단기적 이익을 뽑아낸다. 이런 협박이 반복될수록 세계는 그것을 공갈로 읽기 시작한다. 트럼프는 결국 물러선다는 학습된 불신, 소위 TACO(Trump Always Chickens Out)가 퍼질수록 억지력은 신뢰를 잃게 된다. 역설은 여기에 있다. 아무도 믿지 않는 협박이 쌓이다가 억지력을 회복하려는 절박함에 어느 순간 진짜 방아쇠를 당길 수 있다. 문명의 소멸을 외친 트윗이 진정한 예언이 되는 것은 협박이 너무 강해서가 아니라 너무 자주 허언으로 판명되었을 때일지 모른다.
뉴욕타임스가 공개한 백악관 내부 기록은 트럼프 내각의 집단사고가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준다.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은 네타냐후의 이란 정권 교체 시나리오를 “터무니없다”고 잘랐고,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도 “헛소리”라고 받았다. J D 밴스 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험을 거듭 경고했고, 댄 케인 합참의장은 무기 비축량 고갈을 수치로 제시했다. 그러나 “좋은 것 같다”는 트럼프의 첫인상을 아무도 끝내 거스르지 않았다. 결정은 대통령의 몫이라며, 전쟁을 막을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전쟁을 막지 않았다. 1914년 여름처럼, 신중한 반대의 언어는 무모한 전쟁의 언어를 이기지 못했다.
이번 전쟁이 남긴 가장 위험한 유산은 호르무즈 해협이다. 이란이 제시한 통행료 징수권을 트럼프가 “협상 가능하다”고 한 순간, 세계는 하나의 신호를 읽는다. 적당한 양보를 던지면 어떤 병목이든 무기로 삼을 수 있다는 것을. 이 선례는 말라카 해협, 남중국해, 수에즈로 이어진다. 경제사학자 찰스 킨들버거가 경고한 패권의 공동화는 이런 작은 양보들의 누적으로 완성된다. 한국의 원유 수입 중동 의존도는 70%이고, 카타르는 수십 년간 액화천연가스(LNG)를 공급해온 에너지 파트너다. 항행의 자유가 협상 대상이 되는 세계에서 한국이 치러야 할 비용은, 청구서가 아직 도착하지 않았을 뿐 계속 상승하고 있다.약탈적 패권의 가장 위험한 국면은 동맹을 전쟁 자산으로 끌어들이려 할 때다. 동맹은 두 방향으로 실패한다. 너무 약해 억지력을 잃어 전쟁을 막지 못하거나, 한쪽의 모험주의에 다른 쪽이 편승해 파국을 향해 함께 달려가거나. 1938년 뮌헨 협정은 전자의 전형이다. 억지력을 스스로 내려놓은 동맹은 히틀러의 팽창을 막지 못했다. 후자의 전형은 제1차 세계대전이다. 독일은 오스트리아에 백지수표를 건넸고, 슐리펜 플랜의 군사적 시간표가 외교의 여지를 잠식하며 발칸의 분쟁을 세계대전으로 확전시켰다. 이념적 연대와 전략적 오판이 국지전을 세계전으로 만들었다.
이란 참전 압박은 세계를 이 위험한 경로로 다시 밀어 넣는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도, 한미동맹도 방어동맹이다. 공수동맹이 아니다. 1954년 미국 상원은 한미조약 비준 시 “외부의 무력 공격을 받은 경우가 아니면 어느 당사국도 상대방을 원조할 의무가 없다”고 명시했다. 이 조항은 한국에도 대칭적으로 적용된다. 한미동맹이라는 국가 대 국가의 가장 높은 약속이 한 행정부의 일탈로 영구히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 정부는 ‘국익 중심 실용 외교’와 ‘글로벌 책임 국가’를 함께 추구한다. 규칙 기반 질서 아래서는 이 두 가치가 선순환한다. 그러나 질서 파괴자가 패권국 자신인 지금, 두 목표는 날카롭게 충돌한다.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가진 한국은 이제 우리의 선택이 국제 질서에 미치는 무게를 정직하게 마주해야 한다. 방어동맹의 원칙을 지키는 것, 호르무즈의 항행 자유를 쉽게 협상 대상으로 용인하지 않는 것, 공공재의 공동화를 묵인하지 않는 것, 이것이 글로벌 책임 국가 한국이 짊어져야 할 외교적 부담이다.박종희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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