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코메티의 작업실은 고행의 수도원과 같았다. 그의 예술을 관통하는 핵심은 대상의 본질을 포착하려는 처절한 집착이었다. 그는 모델을 세워두고 수만 번 관찰하며 불필요한 장식을 걷어냈다. 조금이라도 본질에서 벗어났다고 느껴지면 완성 직전의 작품을 가차 없이 부수고 다시 시작했다. 존재의 본질을 보겠다는 불가능에 가까운 목표를 향한 싸움은 인체를 점점 더 가늘고 거칠게 만들었다.
그 배경에는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이 자리한다. 전쟁의 참화를 목격하며 자코메티는 인간 육체의 연약함과 사회적 지위의 허망함을 절감했다. 장폴 사르트르 같은 실존주의자들과 교류하며 모든 껍데기가 벗겨진 뒤에도 마지막까지 남는 실존의 핵심을 찾고자 했다. 그렇게 탄생한 ‘걷는 사람’에는 근육의 힘도, 표정의 서사도 없다. 다만 불안정한 세계 속에서 주어진 한계를 끌어안고 나아가는 인간의 숙명만이 남았다.
그의 조각은 침묵 속의 외침이다. 대도시를 지나는 사람들의 인상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그의 말처럼, 작품 속 인물은 영웅도 패배자도 아닌 보통의 인간이다. 작가는 “어디로 가야 하는지 끝은 알 수 없지만, 그럼에도 나는 걷는다”는 고백을 청동에 새겼다. 예술처럼 삶 또한 본질을 찾아가는 여정이다. 비록 고독할지라도 멈추지 않고 걷는 행위 자체가 위대한 승리임을, 작품 속 남자의 거친 발걸음이 보여주고 있다.이은화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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