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미법에서 유래한 ‘디스커버리(Discovery)’는 원고와 피고가 보유한 증거를 상호 공개함으로써 소송 전에 쟁점을 정리하고 재판을 간소화하려는 제도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에서도 한국형 디스커버리(증거개시 제도) 도입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돼 왔다.
기존의 전통적인 소송과 달리 대기업 등을 상대로 하는 제조물책임 소송이나 중소기업의 기술탈취 소송 등의 경우 구조적으로 증거가 일방 당사자에게 편재될 수 있다. 이런 소송에서는 원고 측의 증거확보가 어려워 청구원인을 증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었다.
현행 민사소송법에도 문서제출명령 등의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위반에 대한 제재수단이 충분하지 않아 사실상 자료 제출을 강제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이에 민사소송을 위한 증거 수집을 위해 부득이 형사고소나 형사고발을 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 과정에서 재판도 지연됐다.
이같은 ‘기울어진 운동장’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학계 및 변호사업계를 중심으로 꾸준히 제기됐다. 그런 노력의 일환으로 중소기업 기술탈취 소송에서 부분적으로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하는 상생협력법 개정안이 최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해 시행을 앞두고 있다.
상생협력법에 도입된 디스커버리 제도의 주요 내용은 법원이 지정한 전문가에게 피고 측 현장 조사 권한을 부여하는 전문가 사실조사 제도(제40조의6), 법원이 위반행위의 존재 여부 증명 또는 손해액의 산정에 필요한 자료를 보전하도록 명하고 그에 따르지 않을 경우 제재를 가하는 자료보전명령 제도(제40조의12), 법정 외에서 당사자 또는 증인을 신문해 그 신문결과를 증거로 인정하고 거짓 진술시 형사처벌을 부과하는 진술녹취 제도(제40조의13) 등이다.
현재 여당은 개별법에서 부분적으로 디스커버리 제도를 도입한 후 일반법인 민사소송법에도 확대하는 단계적 입법방식을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증거 편재의 문제는 특정 분야에 국한되지 않으므로 일반법인 민사소송법 개정을 통해 모든 민사사건에 보편적으로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우선 문서제출명령 대상과 범위를 확대하고 문서제출명령을 위반했을 경우 제재효(제재처분의 효과)를 대폭 강화해야 한다. 변론 전에 쟁점을 조기에 정리하기 위해 전문가에 의한 사전 진술녹취서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필요하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되면 정보 비대칭 문제가 상당 부분 해소돼 피해자의 증명 책임이 사실상 완화되고 실체적 진실 발견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기업의 영업비밀 등이 유출될 우려가 있고, 제출 대상 문서의 범위에 관한 쟁점 때문에 오히려 소송이 장기화돼 기업 비용 부담이 늘어나는 등 부작용도 발생할 수 있어 충분한 숙의를 거쳐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 아울러 기업 입장에서도 증명책임에 의존하는 종전의 ‘버티기 전략’으로는 소송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없다. 내부 자료가 소송에서 공개될 수 있음을 전제로 전략을 수립하고, 문서관리 프로세스도 재검토해야 한다.
이제 민사소송의 패러다임은 전통적인 당사자 자력 입증에서 ‘제도적 조력을 통한 실질적 평등 확보’로 이동하고 있다. 한국형 디스커버리 도입이 국내 기업들의 권리 보호와 경쟁력 향상을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도록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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