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아도[정덕현의 그 영화 이 대사]〈79〉

1 month ago 12

“내가 말했잖아. 달은 달이라고.”

―변성현 ‘굿뉴스’


“진실은 간혹 달의 뒷면에 존재한다. 그렇다고 앞면이 거짓은 아니다.” 영화 ‘굿뉴스’는 아무개(설경구)라 불리는 정체불명의 해결사가 공군 중위 서고명(홍경)에게 하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로 시작한다. 때는 1970년. 일본의 한 공산주의 단체는 민항기를 납치해 평양으로 가려 한다. 아무개는 이를 저지하고자 국내 관제사인 서고명을 통해 평양의 관제사인 척 납치범들을 속인다. 결국 김포공항에 비행기를 착륙시켰지만, 그곳이 서울이라는 걸 알게 된 납치범들은 자신들을 보내주지 않으면 자폭하겠다고 위협한다.

의도적인 과장 연출로 그려진 코미디인지라 이런 황당한 일이 있었을까 싶지만, 놀랍게도 이 이야기는 1970년 실제 벌어졌던 ‘요도호 납치 사건’을 소재로 했다. 영화 속 서고명 중위, 볼모가 돼 인질들을 구한 신이치 차관은 실존 인물을 모델로 만든 캐릭터다. 영화는 요도호 납치 사건의 이면에서 벌어졌을지도 모를 일들을 코믹한 상상으로 채워 넣었다. 앞에 보이는 달이 아닌 그 뒷면에 존재할지도 모르는 진실을 말이다.

결국 인질 구출에 공을 세운 서고명 중위는 훈장을 받을 꿈에 부풀지만, 그 꿈은 미국과 소련의 관계가 화해 분위기를 맞으며 산산조각 난다. 남북 대결 구도를 원치 않는 미국의 압력으로 없었던 일로 덮어진 것. 분통을 터뜨리는 서고명 중위에게 아무개는 말한다. “내가 말했잖아. 달은 달이라고. 누가 꼭 이름을 불러줘야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누가 꼭 알아줘야 의미가 생기는 것도 아니야. 네가 한 일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가 있어.” 어쩌면 세상의 많은 일들은 보이지 않는 아무개들의 노력에 의해 바뀐 건 아닐까. 그들이 아무개라 불리며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건 아닐 게다. 앞면이든 뒷면이든 달은 달이니까.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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