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픽처] '휴민트', 액션과 멜로는 있는데 첩보전의 묘미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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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휴민트'는 영화 '베를린'의 속편임을 부정했다. 그리고 여타 대작과 달리 개봉 전 호들갑을 최소화함으로써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낮췄다. 결과적으로 이 두 가지는 잘한 일처럼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민트'는 어쩔 수 없이 '베를린'을 떠올리게 한다. 류승완 감독의 가장 세련된 액션 영화라 할 수 있는 '베를린'은 한국 첩보 액션의 새 장을 연 작품이다. 남과 북의 요원들이 분단의 상징인 도시 베를린을 배경으로 첩보전을 벌이며 규모와 이야기, 액션 세 마리 토끼를 잡은 작품이었다. 이 영화는 2013년 개봉해 전국 700만 명을 모았다.

2026년에 나온 '휴민트'는 '베를린'의 세계관을 일부 공유한다. '베를린'은 블라디보스토크를 향해 내달리는 표종성(하정우)의 모습으로 막을 내렸고, '휴민트'는 작전 수행을 위해 블라디보스토크에 온 조 과장(조인성)과 박건(박정민)으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휴민트

동남아에서 벌어진 국제범죄를 추적하던 국정원 블랙 요원 조 과장(조인성)은 자신의 작전에서 정보원이 희생되는 충격적 상황을 목도하게 된다.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던 조 과장은 사망한 정보원이 남긴 단서를 쫓아 블라디보스토크로 향한다. 그곳의 북한 식당에서 일하는 종업원 채선화(신세경)를 새로운 정보원으로 포섭한다.

한편, 국경 지역에서 발생한 실종 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파견된 보위성 조장 박건(박정민)은 해당 사건의 배후에 북한 총영사 황치성(박해준)이 연루되어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사건에 약혼자였던 채선화가 엮어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박건은 충격에 휩싸인다. 조 과장과 박건, 황치성, 채선화는 서로 다른 목적으로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만나게 되고, 작전과 배신 그리고 의심과 진실이 넘나드는 여정을 펼치게 된다.

휴민트

때리는 타격감만큼이나 맞는 고통을 강화해 액션의 밀도와 강도 모두를 촘촘하게 그려냈던 '베를린'의 액션 스타일을 '휴민트'도 계승하려고 한다. 조 과장으로 분한 조인성이 펼치는 액션은 스케일도 크고 화려하다. 감정 표현을 절제하면서, 내면의 아픔을 액션으로 표현하겠다는 듯 연기는 과묵하고, 액션은 파워풀하게 소화했다. 강도와 반복을 내세운 액션은 초반과 후반에 집중 배치돼 있지만 분량이 적지 않아 액션을 좋아하는 관객들에겐 감상하는 즐거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액션 거장 류승완의 내공이 집약된 장면들이 여럿 있다. 아파트 내부에서 펼쳐지는 액션신은 '베를린'의 명장면을 떠올리게 하고, 계단을 활용한 낙하 격투신은 '베테랑2'가 생각나기도 한다. '휴민트'만의 시그니처 액션도 있다. 조 과장은 총알이 떨어져 역할을 다한 권총을 흉기로 사용하며 맨손 격투의 강력함을 보여준다.

다만 '휴민트'의 액션신이 정교하게 짜였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이라기보다는 합에 가깝게 느껴지는 것은 아쉽다. 주인공을 중심에 두고 짜인 합은 '날 것'의 역동성과는 차이가 있다. 길고 화려하지만 늘어지기도 한다.

휴민트

흔치 않지만, 액션이 영화의 색깔이자 서사 그 자체가 되는 영화들이 있다. '존 윅'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다채로운 액션이 스토리의 단점을 상쇄하며 액션만으로도 존재가치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휴민트'는 그런 영화는 아니다.

류승완 감독은 대부분의 작품에서 연출과 각본을 겸해왔지만, 냉정하게 말해 훌륭한 각본가는 아니다. '휴민트'는 소재와 설정에 비해 이야기의 규모가 작고 헐겁다. 영화는 시작과 함께 ▲ human(사람)과 intelligence(정보)의 합성어로, 사람을 통한 정보활동(HUMINT)이라는 제목의 의미를 스크린에 뛰운다. 그러면서 조 과장이 정보원에 부채의식을 가질 만한 에피소드를 보여주며, 핵심 사건에 몸과 마음을 투신하는 동기를 강조한다.

'휴민트'는 액션 영화일지 몰라도 정보전이나 첩보전의 양상을 띠는 영화라고 보기는 어렵다. 인적 정보활동이 두드러지는 영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과의 접촉과 관찰, 대화, 관계 형성을 통해 얻는 휴민트보다는 통신·전파 등의 신호를 통한 정보 수집인 시진트(SIGINT)가 돋보인다. CCTV를 통한 감시와 유추가 있고, 판단과 행동에 따른 액션이 등장한다.

휴민트

남북의 대치와 갈등 상황은 제시되지만 양측의 면밀하고 촘촘한 첩보전이라 할만한 두뇌 싸움이나 긴장감 넘치는 심리전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배우들이 조성하는 분위기와 블라디보스토크라는 북한 국경 인접 도시의 서늘한 공기로 첩보전의 무드를 낸다.

이 영화는 휴민트를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니라 휴민트를 지키고자 하는 두 남자의 처절한 사투를 보여주는 영화다. 이 과정에서 두 남자의 강력한 액션이 등장하고,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이야기가 고개를 든다. 액션과 멜로가 어울리지 않는 조합은 아니지만 이 영화에서는 그 조합이 매끄럽다고 볼 순 없다. 액션은 팔팔하지만 첩보전은 싱겁고, 멜로는 진부하다.

첩보전이나 정보전이 거의 없는 것은 정보원이 내부에 침투하기도 전에 발각되거나 위기에 처하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상황으로 인해 비극이 발생하고, 인물들 간의 감정이 충돌하지만 그것이 밀도 있게 진행되지 않는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이나 박진감이 느껴지기보다는 정해진 결말을 향해 무난하게 나아간다.

북한 내부 세력과 연계한 러시아 범죄 조직이 북한 출신 여성들을 도구이자 노리개로 사용하는 건 현실에서도 있을 법한 설정이다. 그러나 영화는 여성들이 이용당하는 장면의 설정과 묘사를 액션 미학을 위한 그림으로 쓴다. 후반부 실내에서 벌어지는 액션신은 실외로도 이어지는 스케일 큰 시퀀스지만 이 과정에서 배경으로 존재하는 피해자들의 모습은 영화적이라기보다는 다소 기괴하게 느껴진다.

휴민트

채선화는 조 과장과 박건을 움직이게 하고, 충돌하게 하는 중요한 캐릭터지만, 정보원으로서의 활약은 미비하다. 신세경은 상황에 맞지 않게 시종일관 아름답게 그려지지만 기능적으로 활용되고, 소비되는 인상이 강하다.

'휴민트'는 류승완 감독의 영화에서 보기 드문 멜로를 만날 수 있다. 박정민, 신세경은 성실한 연기를 하며 박건과 채선화의 안타까운 관계를 그려낸다. 그러나 류승완 감독의 멜로 연출이 액션보다 유려하지 않다는 것은 감안해야 한다. 황치성으로 분한 박해준은 인상적인 악역 연기를 펼침에도 불구하고 투박한 대사로 인해 그의 발화들은 종종 몰입을 깬다.

'휴민트'는 한국 영화로는 오랜만에 만나는 규모의 영화다. 제작비 235억 원을 투입했다. 낯선 이국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화려한 액션을 만끽하고자 한다면 목적에 부합하는 영화다. 다만 류승완 감독이 앞서 선보였던 첩보 액션 '베를린'과 비교한다면 연계는 있지만 진화에 가까운 결과물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ebada@sbs.ckr 

(SBS연예뉴스 김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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