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한국에 온 2008년만 해도 풍경은 사뭇 달랐다. 당시 한국 사회는 여성이 웃을 때 수줍게 입을 가리는 모습을 아름답다고 여기는 문화가 남아 있었고, 감정 표현을 오늘날보다 더욱 절제하는 분위기였다. 사랑을 표현하는 하트 역시 다소 투박했다. 두 사람이 양팔을 크게 머리 위로 올려 만드는 ‘쌍하트’가 대세였고, 이는 연인이나 가족 간의 전유물처럼 보였다. 그 시절의 나로서는 이 장난스러운 손짓이 훗날 국가 정상들의 공식 사진에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사회문화적 관점에서 한국 사회는 지난 20년간 감정을 드러내는 방식에서 거대한 변화를 겪은 것이다.
이 손짓이 본격적으로 세계인의 눈에 들어온 때는 2018년 평창 겨울올림픽이었다. 당시 홍보대사로 활동한 나는 엄지와 검지에만 빨간 색깔이 들어간 ‘손가락 하트 장갑’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대회 기간 동안 내가 안내한 브라질 취재진은 왜 장갑을 그렇게 디자인했는지, 왜 그런 특정 제스처를 위한 전용 제품이 필요한지 한참을 궁금해했다. 하지만 얼마 뒤, 백두산 천지를 배경으로 남북의 두 정상이 나란히 손가락 하트를 그리며 찍은 사진은 이 제스처가 가진 외교적 무게감을 전 세계에 각인시켰다. 정치는 때로 수천 마디의 말보다 단 하나의 기호로 함축되곤 하는데, 손가락 하트가 바로 그 역할을 했다.
2022년에는 미국 백악관에서도 이 하트가 등장했다. 당시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아시아계 대상 증오범죄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방탄소년단(BTS)을 초청했고, 집무실 책상 앞에서 이들과 함께 손가락 하트를 그리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세계 최강국의 대통령이 한국의 아이돌 그룹과 함께 이 제스처를 취한 것은 손가락 하트가 한국 내에서 유행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연대와 존중을 상징하는 글로벌 언어로 격상됐음을 보여줬다. 한국의 소프트 파워가 서구 중심의 문법을 깨고 감성의 새 기준을 제시했음을 드러내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물론 이 문화적 기호를 전 세계가 순조롭게 이해하는 것은 아니다. 최근 인도에서 조회수 6000만을 기록하며 화제가 된 한 영상은 이러한 문화적 충돌을 해학적으로 보여 줬다. 기차에 탄 딸이 창밖의 아버지에게 작별 인사로 손가락 하트를 보냈는데, 아버지가 이를 ‘용돈을 달라는 손짓’으로 오해한 것이다. 아버지는 주머니에서 500루피를 꺼내 딸의 손에 쥐여 줬고, 이 훈훈한 오해는 한류와 세계 각 지역의 전통적 기호학이 충돌한 하나의 사례로 기록됐다. 한국에 온 브라질 고객들을 안내할 때도 비슷한 일이 잦다. 많은 이가 손가락 하트를 보고 이를 돈을 요구하는 ‘팁’ 제스처로 오해해 당황하기도 하지만, ‘당신을 향한 작은 애정’이라는 설명을 듣는 순간 한국의 정에 녹아든다.
18년째 한국과 인연을 맺고 있는 나는 이제 이 문화에 완벽히 녹아들었다. 어디에 있든 카메라 앞에 서면 나도 모르게 손가락 하트가 튀어나온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전염성이 나를 넘어 가족에게까지 번졌다는 것이다. 한국 여행 경험이 있는 어머니는 브라질의 일상 속에서도 사진을 찍을 때면 자연스럽게 손가락 하트를 만든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볼 때 손가락 하트의 성공은 ‘감정의 미니멀리즘’에 있다. 거창한 동작 없이도 은밀하고 세련되게 마음을 전할 수 있다는 점이 현대인의 감각을 사로잡은 것이다. 바이든 전 대통령이 BTS와는 하트를 그렸지만, 다른 국가 대표들과의 회담에서 이를 사용했다는 기록은 없다고 한다. 반면 룰라 대통령은 이 문화를 완전히 내면화한 듯하다. 올해 3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을 맞이한 그는 브라질 땅에서 아주 자연스럽게 손가락 하트를 그리며 우정을 확인했다. 때론 수백 페이지의 보고서보다 국경을 초월한 작은 손짓 하나가 대중의 마음을 더 깊게 파고든다. 반도체와 K팝을 넘어 한국식 소통 방식이 세계인의 일상에 파고들고 있다. 손가락 하트는 한국이 세계와 관계를 맺는 가장 따뜻하고 영리한 소프트 파워다. 이제 이 작은 하트는 한국이라는 국가 브랜드를 시각화하는 가장 강력한 로고가 됐다.카를로스 고리토 브라질 출신 방송인·사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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