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의 핵-미사일 위협 잠재운 세기의 ‘워크 인’[정일천의 정보전과 스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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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더 스파이(The Courier)’.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정일천 전 국가정보원 국장 한 국가의 주요 인물이 적국의 스파이가 되는 경로는 두 가지다. 적국 정보기관에 의한 포섭과 자발적 전향이다. 스파이 세계에서 제 발로 찾아가 적국 스파이를 자원하거나 망명을 요청하는 자발적 전향을 ‘워크 인(Walk In)’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사례가 냉전 시기 서방 스파이로 활동한 소련 정보총국(GRU) 올레크 펜콥스키 대령이다. 그는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활약한 촉망받는 육군 장교였다. 1953년 GRU로 소속을 옮긴 후에도 해외 무관 등의 경력을 쌓으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인사 검증 과정에서 불거진 부친의 과거 반볼셰비키 활동 전력이 발목을 잡았다. 결국 이런 불만이 체제에 대한 환멸로 이어지면서 그는 미국 스파이가 되기로 결심하고 워크 인을 감행했다. 1960년 8월 모스크바 시내 다리 위를 산책하던 미국 학생에게 접근해 전향 의사를 담은 서신을 미국대사관에 전달해 줄 것을 요청하는 다소 무모한 방법이었다. 비록 성공했지만 서신 전달을 담보할 수 없고 내용이 노출될 수 있는 위험한 시도였다. 미 중앙정보국(CIA)은 초기에 그의 서신을 기만공작으로 의심하기도 했지만, 제공해 온 정보를 통해 신뢰성이 확인되면서 그에게 ‘HERO’라는 암호명을 부여하고 공작에 착수했다. 그런데 문제는 소련 국가보안위원회(KGB)의 감시를 피해 어떻게 그와 접선하느냐였다. 미국인은 주목받기 쉬워 활용이 어렵다고 판단한 CIA는 영국 비밀정보국(MI6)과 합동 공작을 추진했다. 모스크바 현지 MI6 요원의 부인을 접선책으로 활용하는 동시에, 동유럽과 무역 중인 영국인 사업가 그레빌 윈을 전달책으로 투입했다. 펜콥스키는 접선 초기부터 소련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비롯한 각종 군사정보와 GRU의 암호체계 등 일급비밀들을 제공해 왔다. 1961년에는 소련 산업시찰단의 일원으로 영국 런던을 방문해 과대평가된 소련 핵과 미사일의 실체를 CIA에 알렸다. 보유 핵무기가 소련 측 주장이나 CIA의 판단보다 훨씬 적고, ICBM 생산 능력 또한 형편없다는 내용이었다. 무엇보다 그의 진가는 이듬해 쿠바 사태가 발발하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소련의 쿠바 내 탄도미사일 기지와 발사대 형태 등 미사일 배치를 입증할 주요 정보를 제보함으로써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소련에 강경 대응하며 미사일 철수 협상을 성공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불행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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