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폭풍[이은화의 미술시간]〈432〉

2 weeks ago 10

거센 바람에 나무가 크게 휘어진다. 사람들은 두 손으로 귀를 막고 있다. 홀로 선 여인도, 뒤편에 모여 선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이 그림은 에드바르 뭉크가 ‘절규’를 그린 같은 해에 완성한 ‘폭풍’(1893년·사진)이다. 거친 자연 앞에서 사람들은 왜 모두 귀부터 막고 있는 걸까.

작품의 배경은 뭉크가 여름마다 찾았던 노르웨이의 해안 마을 오스고르스트란이다. 그해 여름 실제 이곳에는 거센 폭풍이 몰아쳤다. 그러나 뭉크는 바람이 휩쓸고 간 풍경이나 파괴의 흔적을 그리지 않았다. 강풍에 휘어진 나무와 스산한 밤하늘은 폭풍을 암시할 뿐, 시선을 붙드는 것은 귀를 막은 여인들의 불안한 몸짓이다.

흰옷을 입은 여성은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서 있고, 뒤편 여성들은 모여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거나 의지하지 않는다. 저마다 머리를 감싼 채 알 수 없는 고통을 견디고 있다. 어둠 속 불을 밝힌 건물은 평온한 일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이나, 여인들은 그 바깥에 서 있다. 그곳에서 밀려난 것인지, 스스로 뛰쳐나온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뭉크가 살았던 19세기 말 유럽은 산업화와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던 시대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물리적으로 더 가까워졌지만 고립감은 오히려 깊어졌다. ‘폭풍’은 같은 위기 앞에서도 서로 소통하지 못하는 개인과 공동체의 불안을 보여준다.

그림 속 진짜 폭풍이 몰아치는 곳은 해안 마을이 아니라 여인들의 내면일지도 모른다. 그들은 감당하기 힘든 세상의 소음과 내면의 고통으로부터 자신을 지키려 귀를 막고 있다. 시대가 변해도 우리를 흔드는 폭풍의 본질은 여전하다. 뉴스와 정보, 자극적인 논쟁이 쉼 없이 밀려들수록 사람들은 잠시라도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고 싶어진다. 13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 역시 그림 속 인물들과 같은 이유로 귀를 막은 채 시대의 폭풍을 견디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은화의 미술시간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이문영의 다시 보는 그날

  • 오늘의 운세

    오늘의 운세

  • 세종팀의 정책워치

    세종팀의 정책워치

이은화 미술평론가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