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연구의 새 지평을 연 공로로 2022년 ‘경제학계의 필즈상’으로 불리는 존베이츠클라크 메달을 받은 올레그 이츠호키 미국 하버드대 교수가 얼마 전 한국을 방문했다. 외환시장에 대한 그의 설명을 듣다 보니 최근 고환율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갑론을박을 한번 짚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달러 환율이 오를 때마다 비슷한 말이 반복된다. “돈을 너무 풀어서 그렇다” “외환위기의 전조다”라는 식이다. 외환위기를 겪은 우리 국민의 트라우마는 충분히 공감한다. 그러나 최근 학술 연구와 경험적 증거는 이런 설명이 지나치게 단순하다고 지적한다. 광의의 통화인 M2가 사상 최대 규모여서 환율이 오를 수밖에 없다는 논리는 수준과 흐름을 혼동한 것이다. 경제 규모와 금융자산이 커지면 통화량 총량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통화량과 물가, 환율 간 관계는 고인플레이션 시기의 장기적 현상에 가까울 뿐, 단기 환율 움직임을 설명하는 힘은 크지 않다. 실제로 지난 20여 년간 한·미 통화 증가율 격차와 원·달러 환율 변화의 상관도는 높지 않았고, 최근에도 환율 급등을 설명할 만큼 그 격차가 벌어지지는 않았다.
학계 연구도 같은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최근 국제금융 연구에 따르면 환율은 단기적으로 생산성이나 통화량 같은 전통적 거시 변수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외화자산 수요 변화, 금융시장 마찰, 글로벌 은행 규제, 대외 불확실성과 같은 금융시장 충격에 의해 크게 흔들릴 수 있다고 본다. 이런 접근은 환율이 거시지표보다 훨씬 크게 출렁이는 현실을 더 잘 설명한다. 지금처럼 지정학적 변수로 국제금융시장의 불확실성이 큰 시기에는 금융회사의 중개 기능이 제약을 받으며 수요 쏠림이 환율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런데도 많은 논의는 이런 금융시장 동학을 이해하고 해법을 찾기보다 공포를 자극하는 데 치우쳐 있다. 통화량 증가가 문제라면 물가도 이미 통제력을 잃었어야 하지만, 지난 3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연 2.2%로, 2% 목표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음 세대를 위해 재정을 건전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에는 백번 동의하지만, 지금의 고환율을 돈풀기에 따른 통화가치 붕괴로 보는 것은 지나친 비약이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마에스트로’로 불린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도 반세기 넘게 환율 예측을 시도한 끝에 “나의 능력에 대해 상당한 겸손함을 갖게 됐다”고 고백했다. 그만큼 미래 환율을 예측하는 일은 불가능에 가깝고, 만약 가능하다면 언제든지 큰 부자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환율이 곧 달러당 2000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단정하는 주장에는 어떤 근거가 있는지 되묻게 한다.
한·미 금리 역전 탓에 원화 약세가 불가피하니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주장은 일면 타당하다. 그러나 기술 기반 미국 경제의 빠른 생산성 향상으로 성장세 자체가 달라진 지금, 금리 역전 역시 같은 맥락으로 해석할 수 있다. 환율 방어만을 위해 무리하게 금리 차를 줄이려고 하면 내수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일부 주장처럼 원화 약세를 곧바로 위기로 연결시키는 것도 무리다. 진짜 문제는 고환율이 수입물가와 기업 원가, 가계의 실질구매력과 내수에 어떻게 전가되느냐다. 이에 따른 대응도 달라져야 한다. 외환당국은 특정 환율 수준을 고집하기보다 쏠림과 과도한 변동성을 완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동시에 에너지·식료품·중간재 의존도가 높은 부문과 취약 가계에 환율 충격이 과도하게 전가되지 않도록 선별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고환율 시대에 필요한 것은 공포 마케팅이 아니라 정확한 진단과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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