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집단소송법의 가공할 위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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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집단소송법의 가공할 위협

‘기업 천국’ 미국에서 집단소송 때문에 기업이 몸살을 앓고 있다. 시카고에 있는 로펌 두에인모리스가 발간한 ‘2026 미국 집단소송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2025년 연방법원에만 1만3000건 이상, 하루 36건꼴로 소가 제기됐고,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한다. 특히 개인정보 유출 집단소송이 월평균 150건, 하루 5건꼴이었다. 집단소송이 피해 구제 수준을 넘어 천문학적 비용과 소송 남발을 초래하는 상시 경제 리스크가 됐다. 피해 규모와 무관하게 사건 발생 시 곧장 집단소송으로 이어지는 상황이 됐다고 한다. 2025년 미국 내 집단소송으로 인한 예상 합의금이 700억달러(약 105조원)로 역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집단소송법 제정안이 14건 올라와 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미국의 혼돈 상황이 한국에 고스란히 재연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산업계를 강타한다. 법안 대부분이 미국 법률보다 훨씬 ‘원고 친화적’으로 설계됐다. 많은 독소 조항을 내포하고 있어 체력이 약한 한국 기업에 더 혹독한 시련을 안길 것이다.

이 법률은 모든 손해배상청구에 적용될 예정이다. 피고를 제한하지 않으므로 기업, 이사 또는 ‘기업과 이사’를 묶어 피고로 하는 소송이 모두 가능하다. 50인 이상 주주행동주의자들이 개정 상법에 따라 ‘주주에 대한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이사 개인을 제소할 수 있다. 기업과 이사를 보호할 ‘경영판단 원칙’ 입법은 감감무소식이다.

일부 법안 부칙에 정한 ‘소급 적용’ 규정도 우려스럽다. 법이 제정되기 전에 발생한 사건에도 새 법에 따른 집단소송 절차를 적용하면 법 시행 직후 몇 년간 악의적인 법조 브로커들이 지난 사건을 다시 파헤쳐 수임료 수익을 노리는 이른바 ‘기획소송’이 폭증할 것이다. 기업으로서는 예측하지 못한 법적 책임을 소급해 부담하게 돼 재무적 불확실성이 눈덩이처럼 커진다.

기업은 행위 당시의 법과 제도 및 환경에 맞춰 운영된다. 현재 상황에서 발생 가능한 리스크를 기반으로 책임보험 등 대비책을 마련한다. 과거 사건 발생 당시에는 집단소송이라는 리스크를 전혀 상정하지 않았으므로 이에 대한 대응은 전무했다. 회계 처리가 끝났거나 합의된 사안 또는 과거에는 소송 규모가 작아 감당할 수 있었던 사건이 갑자기 거액의 배상금이 필요한 대규모 집단소송으로 확대되면 대응 역량이 부족한 중소·중견기업에는 단 한 건의 소송만으로 기업 도산으로 이어지는 비대칭적 타격을 줄 수 있다.

헌법 제13조 제1항은 ‘형벌불소급의 원칙’을 규정하고 있다. 제2항은 소급입법을 금지함으로써 법치국가 원리의 핵심인 ‘법적 안정성’과 ‘신뢰보호의 원칙’을 헌법적으로 선언하고 있다. 이에 따라 손해배상책임을 강화하는 법률에선 거의 예외 없이 소급효를 배제해 왔다. 제조물책임법, 하도급법, 개인정보보호법, 기간제법, 신용정보법, 자동차손해배상보장법 등이 그렇다. 판례는 행정법(대법원 2005.5.13. 선고 2004다8630 판결)과 민사법(대법원 2014.6.12. 선고 2014다12270 판결)에서도 이 원칙을 지켰다. 프랑스 민법전 제2조는 ‘불소급 원칙’을 명시해 이를 법 해석의 대원칙으로 삼는다.

국회가 헌법상 소급입법 금지 원칙을 모를 정도로 무식하진 않을 것이다. 아마도 소급효 부분을 쟁점화한 다음, 이 부분을 양보함으로써 법 통과를 쉽게 하려는 전략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기업과 이사에게 재앙이 될지 모르는 집단소송법이 눈앞의 현실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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