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떼 칼럼] 유령의 복도가 섬뜩한 헨리 8세의 궁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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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떼 칼럼] 유령의 복도가 섬뜩한 헨리 8세의 궁전

영국 런던 남서쪽 리치먼드의 템스강변을 따라 걷다 보면 시공간이 분리된 듯한 거대한 건축물과 마주하게 된다. 분주한 도로 옆으로 미스터리한 담벼락이 있고 그 너머에는 웅장한 붉은 벽돌로 쌓아 올린 성벽이 보이는데, 바로 런던 햄프턴코트다.

햄프턴코트는 권력의 대이동과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이 건물 뼈대와 벽돌 마디마디에 박제된, 그 자체로 영국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입체적인 ‘하나의 소장품’이다. 본래 이 궁전은 1515년 헨리 8세의 총애를 받던 토머스 울지 추기경이 지은 호화 저택인데, 숙청 위기를 직감한 그가 왕에게 바쳤다.

오디오가이드를 들으며 따라가다 보면 마치 시간여행을 하는 듯하다. 궁전 심장부이자 튜더 양식의 정수로 구축한 공간인 그레이트홀을 먼저 만날 수 있다. 이 웅장한 연회장은 헨리 8세의 절대권력과 장엄함을 대외에 선포하기 위해 설계됐다. 천장을 올려다보면 목수들의 경이로운 장인정신이 깃든 해머빔 루프(보가 없는 아치형 나무 천장 구조)가 펼쳐지는데 아래의 흰 벽 및 부드러운 태피스트리 장식과 달리 강렬하고 압도적인 분위기를 내뿜는다.

헨리 8세는 중세 선조들의 기사도적인 업적을 동경하며 이런 중세풍 천장을 고집했다. 화려한 천장 구조물 속에는 기묘하게 깎아 만든 두상들인 ‘도청자들’이 숨어 있어, 신하들에게 귓속말을 조심하라는 무언의 경고를 던진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1533년 이 천장 작업이 시작될 무렵 왕이 첫 번째 왕비와 이혼하고 맞이한 두 번째 왕비 앤 불린의 흔적이다. 나무 스크린에 정교하게 맞물려 새겨진 헨리와 앤의 이니셜 ‘H’와 ‘A’, 매 배지와 왕비를 뜻하는 ‘AR’ 문장은 앤이 처형당한 후에도 지워지지 않은 채 오늘날까지 그 기록으로 살아남았다.

그레이트홀을 지나 발걸음을 옮기면 튜더 왕가의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왕실 예배당에 도달한다. 눈이 시릴 정도로 풍성하고 다채로운 색감 그리고 겹겹이 쌓인 역사를 자랑하는 이 예배당의 화려한 볼트 천장은 1530년대 헨리 8세의 명으로 설치된 것으로, 이곳의 핵심 아카이브다.

궁전에서 가장 신성하면서도 정치적인 상징물은 단연 헨리 8세의 왕관이다. 왕권의 절대적 상징이던 이 왕관은 1649년 군주제가 폐지되며 런던탑에서 녹아 사라지는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했다. 비록 재건된 왕관이지만 원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 그 화려함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왕관이 상징하던 권력의 이면에는 궁전 복도마다 흘러넘치던 비극의 눈물이 있었다. 1541년, 헨리 8세의 다섯 번째 왕비인 캐서린 하워드는 간통 혐의로 고발당했다. 불과 몇 년 전 사촌인 앤 불린이 같은 혐의로 처형당한 것을 기억한 그는 공포에 질려 방을 탈출했다.

전설에 따르면 캐서린은 왕실 예배당에 있을 왕에게 자비를 구하기 위해 비명을 지르며 복도를 달렸으나, 문 앞에 다다르기 직전 경비병에게 붙잡혀 끌려갔다. 석 달 뒤 런던탑에서 참수된 그의 영혼은 여전히 이 궁전 ‘유령의 복도’를 달리며 자비를 구걸하는 비명으로 남아 궁전의 가장 서늘한 심령 아카이브가 됐다.

과거와 현재가 완벽하게 결합한 이 궁전은 매년 세계에서 관광객 수백만 명이 찾는 영국의 살아있는 역사적 무대가 됐다. 현재까지도 사람들은 앤 불린의 흔적을 찾고, 유령의 복도를 걷고, 정원을 거닐며 과거의 시간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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