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을 바꿔도 통증이 낫지 않는다면… 치료의 열쇠는 ‘뇌 회로 정상화’[이진형의 뇌, 우리 속의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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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의 통증까지 관장하는 뇌
뇌는 신체 신호의 해석, 통제 기관… 뇌신경 손상-신호 전달체계 오류
만성 통증 불러 삶의 질 떨어뜨려… 단순히 통증 부위 치료로 접근 시
만성 통증, 정신적 합병증 못 잡아… 뇌 회로 기능 정상화가 핵심 될 것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2025년 개봉한 영화 ‘슈퍼맨’에서는 슈퍼맨과 싸우는 아주 강력한 악당 울트라맨이 알고 보니 슈퍼맨의 머리카락 몇 개에서 유전자를 복제해 만든 슈퍼맨의 클론임이 밝혀진다. 그런데 그 클론은 슈퍼맨과 달리 스스로 판단해서 싸우지 못한다. 슈퍼맨을 오랫동안 연구해온 렉스 루터가 명령을 내리면, 클론이 이를 수행하는 방식으로 싸운다. 신체적으로는 슈퍼맨과 유사한 능력을 지녔지만 판단을 하는 지적 능력은 떨어지는 것이다.》슈퍼맨은 너무나 잘 싸우는 상대 때문에 고전한다. 그러다 “Brain beats brawn(뇌가 신체적 힘을 이긴다)”이라고 되뇌면서 여기에 착안한다. 자신의 지능을 과시하는 렉스를 상대로 그가 클론에게 명령을 내릴 때 사용하는 드론을 부수기로 한 것이다. 드론이 파괴되며 더 이상 명령을 입력받지 못한 클론은 슈퍼맨에게 밀리기 시작한다. 즉, 슈퍼맨은 클론의 두뇌에 해당하는 렉스의 지휘통제를 제거하고 난 뒤 클론에게 승리한다.

영화 속 이 장면에서도 강조한 것처럼 뇌는 신체의 많은 프로세스를 관장하는 기관이다. 그리고 뇌는 통증에도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국제통증학회는 통증을 원인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한다. ‘통각수용성 통증’은 우리가 가장 흔히 접하는 통증으로, 비신경계 조직 손상에 의해 발생한다. 피부, 근육, 뼈, 관절 등의 근골격계 손상으로 인해 쑤시거나 날카로운 느낌으로 나타나는 통증이다. 위, 장과 같은 내부 장기의 손상이나 질병으로 인해 둔하거나 쥐어짜는 듯한 통증도 이에 포함된다. 손상된 조직에 대한 정상적 반응으로 통증 수용체가 활성화돼 발생한다. 손상 원인이 사라지면 통증도 사라진다는 특징이 있다.

반면 ‘신경병성 통증’은 신경계의 손상이나 기능 이상으로 발생하는 만성 통증이다. 타는 듯한 느낌, 저림, 찌릿거림 등 불쾌한 감각을 유발한다. 가벼운 접촉에도 통증이 느껴지거나 자극 없이도 통증이 발생하기도 한다. 당뇨병성 신경통, 대상포진 후 신경통, 좌골신경통 등이 대표적이다. 당뇨병이나 대상포진 바이러스로 인해 신경이 손상되거나, 허리 디스크 등으로 좌골신경이 압박을 받으면서 발생한다. 팔이나 다리를 절단한 환자들이 없어진 신체 부위에서 통증을 느끼는 현상인 ‘환지통’도 이에 해당한다. 뇌가 상실된 신체 부위로 보낸 신호에 적절한 피드백을 받지 못하거나, 사라진 신체 부위에 맞춰 신호 전달 체계를 새로 정립하는 과정에서 신경 신호를 잘못 해독해 생기는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두 유형의 통증에 명확하게 해당하지 않는 환자들도 적지 않다. 이에 따라 2017년 국제통증학회는 명확한 조직이나 신경계 손상, 질병 없이 나타나는 만성 통증을 ‘침해수용성 가소성 통증’으로 새롭게 분류했다. 중추신경계에서 통증 신호를 처리하는 방식이 변화해 작은 자극에도 민감도가 증가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섬유근육통은 만성적으로 전신근육과 관절에 통증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통증 신호에 만성적으로 민감해져 발생한다고 추정되며 피로감, 수면장애, 인지장애 등을 동반한다. 이 밖에도 방광통증증후군, 만성 요통 등이 이에 속한다.

이렇듯 뇌신경계의 직접적 손상이나 신호 전달 체계의 오류는 만성 통증을 유발할 수 있다. 뇌신경계의 가장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신체 보호이며, 이를 위해 통증을 느끼는 기능은 필수적이다. 손이 다치거나 타고 있거나 위험에 노출되었는데도 통증을 느끼지 못한다면 신체 건강을 유지하기가 매우 어려울 것이다. 실제로 병원을 찾는 주요 이유도 통증을 통해 신체 이상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통증을 관장하는 시스템 자체에 손상이 가거나 신호 전달에 이상이 생기면, 만성 통증이 오히려 하나의 장애가 되어 정상적인 삶을 어렵게 한다. 나아가 만성 통증은 다시 신경 전달 체계에 영향을 미쳐 우울증, 수면장애 등을 유발하기도 한다. 따라서 뇌신경 시스템의 기능을 정상화하는 것은 통증 치료 자체뿐만 아니라 우울증, 불안, 수면장애 같은 뇌 질환 합병증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도 매우 중요하다.

피부나 근육 등 신체 부위가 열이나 강한 물리적 자극을 받으면 감각신경이 활성화돼 전기 신호를 생성하고, 이 신호는 척수를 거쳐 뇌로 전달된다. 뇌의 시상에서 신호를 받아 감각중추로 전달되면 통증을 느끼게 된다. 이때 강한 통증 신호는 통증 회로를 따라 전달되고 약한 감각은 위치감각 회로를 따라 전달된다. 말초신경, 척수, 뇌에 걸친 이러한 통증 신호 처리 신경망의 건강을 유지하려면 그 기능을 확인하고 문제가 생기면 치료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슈퍼맨은 자신의 클론 울트라맨을 상대로 뇌의 역할을 하는 드론을 제거해 그를 물리쳤다. 이처럼 통증을 이겨내기 위해서라도 통증을 관장하는 뇌 회로 기능을 정상화해야 한다. 이것이 미래 통증 관리의 핵심 기술이 될 것이다.

이진형 미국 스탠퍼드대 생명공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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