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김재영]서른 살 민노총, 이젠 어른의 책임감을

3 weeks ago 7

김재영 논설위원

김재영 논설위원
한국 노동계에 11월은 각별한 달이다. 한국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열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절규와 함께 분신한 날이 1970년 11월 13일이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생일도 이때다. 1995년 11월 둘째 주 토요일이던 11일 창립대의원대회를 열고 공식 출범했다. 다음 날인 11월 12일 서울 여의도광장을 가득 메운 7만 명의 노동자·시민들이 노동운동의 새 역사를 선언했다. 피날레는 노동운동의 대표곡 ‘철의 노동자’ 합창이었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으로 촉발된 민주노조 운동을 이어받은 민주노총은 30년 동안 양적으로 크게 팽창했다. 출범 당시 41만6000명이던 조합원은 지난해 106만 명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법외단체로 출발했지만 1999년 합법단체가 됐고, 지금은 한국노총과 함께 제1노총 자리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하고 있다. 하지만 질적 성장은 더디다. 연대와 책임의 열사 정신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낙수효과’ 주장하는 그들만의 운동

민주노총의 주력은 여전히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정규직, 중장년층 조합원이다. 노동운동 초기에는 조직화가 용이한 대기업 공장이 투쟁을 선도했고,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과 근로조건을 함께 끌어올린 측면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가 커지면서 그들만의 운동이 되고 있다. 평균 연봉 1억 원이 넘는 노조가 “빼앗긴 우리 피땀을 투쟁으로 되찾자” 하고 “하루를 살아도 인간답게 살고 싶다”고 외치는 상황이 됐다.

기득권화된 노조는 여전히 노동운동 초기의 ‘낙수 효과’를 믿는다. ‘우리가 잘돼야 전체가 잘된다’는 논리다. 정년 65세 연장, 주 4.5일제 도입 등도 우리가 선도하겠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결과적으론 노조의 보호를 두껍게 받는 상위 노동자들만의 잔치로 그칠 공산이 크다. 노동시장 이중 구조의 벽을 더욱 견고하게 해 비정규직·중소기업 노동자들의 상향 이동과 청년들의 일자리 진입 자체를 막을 것이란 우려가 높다.

최근 민주노총 택배노조가 촉발한 ‘새벽배송 금지’ 논란은 민주노총이 대중과 현장의 생각과 얼마나 괴리돼 있는지 보여준다. 새벽배송이 막히면 소비자는 물론 영세 소상공인, 납품 농가 등의 피해가 불가피한데도 거칠게 문제를 제기했다. 당사자인 택배 기사들도 일자리와 생존권을 위협한다고 반대한다. 민주노총이 새벽배송을 걸고 넘어지는 데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의혹도 나온다. 쿠팡노조 측은 “민주노총 탈퇴에 대한 보복으로 보인다”며 성명서를 냈다.

결과 책임 회피하는 선택적 참여

노동시장 이중 구조 개선 등 노사정이 함께 머리를 맞대야 할 노동 개혁 사안에서는 정작 책임을 회피한다. 민주노총은 1999년 2월 노사정위원회(현 경사노위)를 탈퇴한 후 아직까지 복귀하지 않고 있다. 노동계의 양보가 필요한 사안에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장외투쟁만 고집하는 것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민주노총 출신인 문성현 위원장을 임명했을 때도 참여를 거부해 당시 문 위원장이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잃을 것 없는 자리에는 참석한다. 주 4.5일제 도입을 논의하는 정부 주도의 ‘실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에 들어가 연내 입법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대정부 투쟁을 해 오면서도 사무실 임차보증금은 정부로부터 받아 왔다.

최근 정부가 6대 구조 개혁 가운데 하나로 내건 노동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는 노동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일률적 법정 정년 연장, 임금 감소 없는 근로시간 단축만 고집해서는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 배곯는 어린 ‘시다’들에게 차비를 털어 풀빵을 사주고 자신은 집까지 걸어갔던 청년 전태일의 마음을 기억해야 한다. 더는 약자라고 볼 수 없는 민주노총이 이제 노동계의 대표로서 어른의 책임을 다해야 할 때다.

오늘과 내일 >

구독

이런 구독물도 추천합니다!

  • 이은화의 미술시간

    이은화의 미술시간

  • 사설

  • 오늘과 내일

    오늘과 내일

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