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기업들의 단체장까지 청탁이 오가는데 공공기관 인사에선 더 많은 거래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는 건 합리적 의심이다. 331개 공공기관 가운데 현 정부 들어 임명된 기관장은 한국산업은행장과 한국수출입은행장 두 명뿐이다. 앞으로 에너지, 금융, 복지, 주택 등의 분야에서 기관장 인사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과거 정부완 다르다고 주장하려면 말이 아닌 결과로 보여줄 수밖에 없다.
‘정치권 내정설’ 이번에도 반복
하지만 현재 진행 중인 공공기관 인사를 보면 달라진 모습을 찾기 힘들다. 민간기업이지만 민영화 이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치적 외풍에 시달렸던 KT의 경우 차기 사장 인선에서도 정치권 낙하산과 내부 카르텔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 33명이 지원한 사장 공모는 9일 3명으로 압축됐는데, 문재인 정부 청와대 경제보좌관 출신이자 현 정부에서 국정기획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후보가 들어 있다.
지난달 정부가 공무원 인사 제도로 공식 도입한 ‘국민추천제’도 인사 청탁의 루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선출직을 제외한 정무직, 공공기관 임원, 행정기관 소속 위원회의 민간위원, 국가공무원 중 개방형 직위까지 폭넓게 추천할 수 있는데 측근들을 활용한 ‘셀프 추천’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실제로 6월 정부가 장차관 후보에 대해 국민 추천을 받자 일부 국회의원이 보좌관을 동원해 단체 대화방에 ‘의원님을 장관으로 추천해 달라’고 했다가 논란을 빚기도 했다. 후보를 내려 꽂는 입장에서도 ‘윗선의 뜻’이 아닌 ‘국민의 뜻’이라고 포장하기 쉬워졌다.
‘낙하산 방지법’부터 만들어야
낙하산 부대의 공습이 예고되고 있지만 공공기관장 자격 요건을 강화하고 선임 절차의 투명성을 높이는 ‘낙하산 방지법’은 하세월이다. 공공기관장을 하려면 해당 분야에서 5년 이상 전문 업무 경험이 있어야 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은 낙하산 방지법이 제19대 국회부터 여러 차례 발의됐지만 번번이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여당은 공공기관장과 대통령의 임기를 일치시키는 ‘알박기 방지법’에만 관심이 쏠려 있을 뿐이다. 청탁 문자에 대해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은 내부 감찰 결과 청탁이 대통령실 내부에 전달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배송 오류일 뿐이지 청탁 자체가 없었던 일이 되는 건 아니다. 이번 기회에 정부의 인사 시스템에 대한 철저한 재점검과 보완이 이뤄져야 한다. 이번 일의 교훈이 ‘다신 이런 일이 없어야 한다’가 아니라 ‘좀 더 조심해 다신 들키지 말아야겠다’가 돼선 안 될 것이다.김재영 논설위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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