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장택동]‘명령 없는 항명’이라는 모순

2 weeks ago 3

장택동 논설위원

장택동 논설위원
“집단 항명한 검사들은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 11일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페이스북에 이 글을 올린 이후 민주당에서는 ‘대장동 일당’에 대한 검찰의 항소 포기를 둘러싼 검사장들의 반발을 ‘집단 항명’으로 규정하고 이들을 강등, 징계, 처벌하라고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졌다. 정치적 레토릭을 넘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범여권 의원들이 19일 실제로 검사장들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사법적인 문제가 된 만큼 법리적으로 타당한 주장인지 따져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여권에선 검사장 18명이 내부망에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글을 올린 게 공무원의 집단 행위를 금지한 국가공무원법 위반이라고 주장한다. 여권 법사위원들은 “공무원이 다수로 결집해 직무 기강을 해치거나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할 위험을 야기할 경우 명백한 위법이라는 게 대법원의 확립된 판례”라고도 했다. 이런 취지의 법리가 포함된 대표적 판결이 2009년 6월 시국선언을 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간부들에 대한 대법 전원합의체 판결이다.

여권 “檢 불법 집단 행위”… 법리에 맞나

그런데 대법은 어떤 집단 행위가 정치적 중립성을 침해하는 것인지는 “동기 또는 목적, 시기와 경위, 정치세력과의 연계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전교조 시국선언의 경우 2009년 10월 보궐선거를 앞두고 각계에서 정부를 비판하는 시국선언이 잇따르던 시점에 나왔고, “이명박 정권의 독단과 독선적 정국 운영” “국정 전면 쇄신” 등 내용이 적혀 있다. 대법은 “선거에 대한 영향 내지는 반(反)정권 전선의 구축이라는 뚜렷한 정치적인 의도”가 있었다고 보고 유죄 판결의 주요 사유로 제시했다.

반면 검사장들이 올린 글에는 정치적 표현이 전혀 없다. 당시 노만석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와 이유를 설명해 달라고 했을 뿐이다. 이번 판결은 대장동 개발업자들에 대한 것이고, 이재명 대통령과 직접적인 관련도 없다. 그래서 정성호 법무부 장관이 “이 사건이 이 대통령과 무슨 관계가 있나”라고 한 것 아닌가. 여권 법사위원들이 어떤 측면에서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을 무너뜨린 일탈 행위”라고 한 건지 납득하기 어렵다. 또 “공익에 반하는 목적을 위한 행위”인지가 집단 행위의 불법성을 판단하는 한 요소라는 대법 판례도 있다. 항소 포기로 대장동 일당이 얻은 천문학적 불법 이익을 국가가 추징할 길이 막혔는데, 항소를 안 한 이유를 물어보는 게 공익에 어긋나는가.

‘의견 내지 말라’ 지시한 사람도 없어

검사장들의 행동이 항명이라는 주장도 사리에 맞지 않는다. 국가공무원법과 검찰청법의 ‘상관의 명령 또는 지휘·감독에 따라야 한다’는 조항을 어겼다는 취지라면, 먼저 상급자의 명령을 하급자가 거부하는 일이 벌어졌어야 했다. 그런데 정 장관은 일절 지시한 게 없다고 하고, 노 전 대행은 서울중앙지검장에게 항소 방침을 재검토하라고 했을 뿐이다. 누구도 다른 검사들에게 ‘항소 포기에 대해 의견을 내지 말라’ 같은 명령이나 지휘를 한 게 없다. 그런데 검사장들이 어떤 명령을 거부했다는 건지 모를 일이다. 막상 고발이 이뤄지고 나자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뒷감당은 거기(법사위)서 해야 할 것”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는 뜻인지, 아니면 고발까지 한 건 과하다는 의미인지 불분명하다. 어느 쪽이든 이렇게 민감한 사안을 놓고 불협화음이 나온다는 것 자체가 여권의 대응에 무리가 있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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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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