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살아남는 동네에는 공통점이 있다… ‘직-주-락-교’ 어우러진 곳[김대균의 건축의 미래]

1 day ago 1

사람들이 끌리는 ‘걷고 싶은 동네’… 오래된 건물과 새 문화 섞여 활력
빠르게 소모되는 SNS ‘핫플’에는 임대료 상승에 대형 카페만 즐비
지역생태계 지켜낸 日오모테산도… 서울 동네가 배워야 할 도시 철학

일본 도쿄 아오야마의 ‘프롬 퍼스트(From 1st)’ 외관. 1975년 상점·주거·작업실 등을 결합해 만든 복합공간으로, 오모테산도 문화의 기반이 됐다. 사진 출처 야마시타 가즈마사 건축연구소

일본 도쿄 아오야마의 ‘프롬 퍼스트(From 1st)’ 외관. 1975년 상점·주거·작업실 등을 결합해 만든 복합공간으로, 오모테산도 문화의 기반이 됐다. 사진 출처 야마시타 가즈마사 건축연구소
《뜨는 동네, 지는 동네의 차이

서울 성수동, 을지로, 익선동, 망원동, 서순라길 등 사람들이 많이 찾는 동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반대로 한때 인기를 끌었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동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이런 동네들이 건강하게 지속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일까. ‘동네를 즐긴다’는 것은 단지 인기 있는 카페나 상점을 찾는 것 이상의 문화적 현상을 담고 있다.》


김대균 건축사·착착건축사사무소 대표

김대균 건축사·착착건축사사무소 대표
요즘 뜨는 동네들의 공통점 가운데 하나는 차로 다니기에는 불편하지만 걷기에는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걷기 좋은 동네는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주고, 자연스럽게 머무는 시간을 늘린다. 두 번째 공통점은 과거와 현재의 모습이 함께 적층돼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철물점과 감각적인 카페가 공존하고, 옛 골목과 새로 난 길이 서로 얽혀 있는 공간은 시간의 흔적이 켜켜이 쌓인 그곳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든다. 이런 일상의 풍경은 그 동네만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한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찾았던 동네 가운데 최근 관심에서 멀어진 곳들도 있다. 이들 동네의 공통점은 임대료 상승으로 인해 대기업 프랜차이즈만 살아남을 수 있는 구조가 되면서 원래 갖고 있던 동네 고유의 분위기를 잃어버렸다는 점이다. 여기에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는 특정 장소로의 쏠림 현상을 극대화한다. 동네가 얼마간 소비되고 버려지면 시민들이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공간은 점점 줄어들게 된다. 이런 흐름이 확대되면 지역공동체에 대한 인식 역시 축소될 수밖에 없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 풍경. 옛 건물과 카페, 상점, 골목이 어우러지며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사진 출처 서울사랑 홈페이지

서울 성동구 성수동 풍경. 옛 건물과 카페, 상점, 골목이 어우러지며 독특한 리듬을 만들어낸다. 사진 출처 서울사랑 홈페이지
지속 가능한 동네는 몇 가지 요소가 함께 갖춰진 곳이다. 바로 ‘직(職)·주(住)·락(樂)·교(校)’다. 먼저 ‘직’은 일자리를 뜻한다. 성수동이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평일에도 유동인구를 만들어내는 직장인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 ‘주’는 거주 공간이다. 실제 사람이 살고 있는 동네의 가게들은 단골을 기반으로 비교적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고, 주민들 역시 동네가 주는 심리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락’은 즐거움이다. 감각적인 점포와 식당, 카페뿐 아니라 공원, 미술관, 도서관 같은 문화 공간이 함께 있는 동네는 그곳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며 사람들로 하여금 관심을 갖게 만든다. 마지막은 ‘교’, 즉 학교다. 학교는 안정적인 정주 인구의 토대가 될 뿐 아니라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환경을 만든다.

반면 점포와 카페, 식당만 줄줄이 늘어선 채 일방적인 소비 공간으로 변한 동네는 오래 지속되기 어렵다. 사람들이 어떤 동네를 찾는 이유는 그 동네만의 분위기와 그 분위기를 즐길 수 있는 소소한 장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제가 사라지면 사람들은 이미 소비돼 버린 장소를 떠나 또 다른 동네를 찾아가게 마련이다.

일본의 오모테산도는 많은 외부인이 찾는 대표적인 지역이지만, 동시에 197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일본 패션문화를 이끌어 온 동네이기도 하다. 이곳에는 감각적인 상점과 식당뿐 아니라 안정적인 주거지가 넓게 형성돼 있다. 또 메이지신궁과 네즈미술관, 사립대인 아오야마가쿠인대 등이 자리하고 있다. 즉 ‘직·주·락·교’의 환경이 안정적으로 갖춰진 동네다. 여기에 50년 넘게 지역의 정체성과 인기를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 인물의 역할도 크다. 바로 ‘라이프스타일 프로듀서’라는 개념을 만든 하마노 야스히로(浜野安宏)다. 그는 고도성장기였던 1960년대, 서브컬처 문화가 확산되던 흐름 속에서 뛰어난 안목으로 패션, 디자인, 아트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이름을 알렸다. 이후 1970년 출간한 ‘패션화 사회’가 10만 부 이상 판매되며 대중적으로도 알려지게 됐다.

하마노는 이 책에서 “미래의 모든 상품과 산업은 패션, 즉 감성과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에 둬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통찰을 대중에게 전했다. 또한 그는 여러 유럽 도시를 경험하며 인간의 기본소양은 결국 도시와 지역 환경에서 비롯된다는 점을 깨달았다. 이를 바탕으로 건물의 안과 밖, 공과 사의 이분법적인 경계를 넘어서는 제3의 영역으로서 ‘커먼 스페이스(Common Space·공유공간)’ 개념을 지역 개발의 철학으로 삼았다.

프롬 퍼스트 내부. 건물과 거리를 계단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안팎의 경계를 허물었다. 사진 출처 착착건축사사무소

프롬 퍼스트 내부. 건물과 거리를 계단으로 자연스럽게 연결해 안팎의 경계를 허물었다. 사진 출처 착착건축사사무소
그는 ‘직·주·락’을 하나로 연결해 언제나 일하고, 살고, 놀 수 있는 복합 공간을 아오야마에 기획했다. 그 결과물이 바로 ‘프롬 퍼스트(From 1st)’다. 1975년 완공된 이 건물의 저층부에는 이세이 미야케, 가와쿠보 레이 등 패션 브랜드 매장과 식당, 카페 등이 들어섰고 상층부에는 디자이너와 작가들의 작업실, 주거 공간이 함께 배치됐다. 내부에는 동네와 건물을 잇는 여러 출입구와 커먼 스페이스를 만들어 누구나 드나들게 하면서 안과 밖의 경계를 느슨하게 만들었다. 이후 이 건물에 입점했던 패션 브랜드들은 크게 성장해 주변 거리에 플래그십 가게를 잇달아 열었고, 그렇게 50년이 지나 지금의 오모테산도 패션거리가 구축됐다.

하마노는 건축과 도시의 건강한 관계가 시민사회의 초석이 된다고 보고, 감성과 라이프스타일을 중심으로 동네 콘텐츠를 기획했다. 이러한 그의 시각은 빠르게 뜨고 또 빠르게 사라지는 오늘날 서울의 여러 동네에 시사점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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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균 건축사·착착건축사사무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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