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재정비” vs “탁상행정”… 트럼프의 ‘반사 연못’ 보수 논란[글로벌 현장을 가다/신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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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색 원해” 트럼프 지시에 워싱턴 반사 연못 보수
물 빼고 바닥 코팅했지만… 배관 교체 못 해 효과 미미
비용-절차 논란으로 시끌… 시민 반응도 엇갈려

5일(현지 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의 명물 ‘반사 연못(Reflecting Pool)’에 공사 후 물을 채우는 모습 워싱턴=AP 뉴시스

5일(현지 시간) 미국 수도 워싱턴의 명물 ‘반사 연못(Reflecting Pool)’에 공사 후 물을 채우는 모습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올 4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 연못의 사진을 들고 바닥 보수 등 대대적인 개조 작업을 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노후 배관 교체 없이 일부 보수 작업만으로는 누수, 조류 문제 등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AP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올 4월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 연못의 사진을 들고 바닥 보수 등 대대적인 개조 작업을 하
겠다고 밝혔다. 다만 노후 배관 교체 없이 일부 보수 작업만으로는 누수, 조류 문제 등을 완전히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워싱턴=AP 뉴시스
1922년 유명 건축가 헨리 베이컨이 만든 이 연못은 워싱턴의 명소인 링컨기념관과 워싱턴기념탑 사이에 있다. 폭 49m, 길이 640m의 대형 연못이다. 링컨기념관 계단에 서면 길게 펼쳐진 이 연못의 수면 너머로 워싱턴기념탑이 보이고 그 뒤로 연방의회 의사당까지 이어지는 워싱턴의 상징적 경관이 형성된다.

이 연못은 흑인 인권 운동가 마틴 루서 킹 목사가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라는 명연설을 한 곳이다. 각종 시민권 운동 집회 등 미국 현대사의 배경 장소로 쓰였고 ‘포레스트 검프’(1994년) 등 유명 영화에도 단골로 등장했다.

트럼프 “칙칙한 연못 색깔 바꿔야”

부동산 사업가 출신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올 4월 전격적으로 이 연못의 개조 계획을 발표했다. 독일에서 방문한 대통령의 한 친구가 이 연못을 보고 “어둡다”고 지적한 것이 공사의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곧바로 연못의 물을 완전히 빼고 바닥 보수 및 재도색 과정을 거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7일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이 연못을 직접 찾았다. 그는 새로 코팅된 연못 바닥 위를 차량으로 가로질러 지나갔다. 물이 빠진 연못 안에 서서 취재진에게 “이 연못은 사람들이 원했던 색깔을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이제는 훌륭한 색을 갖게 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못 바닥을 자신이 ‘성조기 블루(American Flag Blue)’라고 부르는 푸른색으로 덮겠다고 밝혔다. 과거 자신이 진행한 부동산 개발 사업을 언급하며 “100개가 넘는 수영장을 지어본 경험이 있다. 산업용 수영장 코팅재를 사용해 이 연못의 바닥을 깨끗하고 훌륭하게 만들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사 연못의 일부 문제는 오래전부터 제기됐다. 건축가 베이컨은 하늘을 비추는 거대한 거울 같은 공간을 구상했지만 이 연못은 불안정한 진흙 퇴적층 위에 조성됐다. 이로 인해 시간이 흐르면서 지반이 움직였고 콘크리트 바닥에는 균열이 생겼다. 얕고 넓은 수면은 여름철 햇볕에 쉽게 가열돼 조류가 번식하기 좋은 환경이 됐다. 결국 반사 연못은 수십 년 동안 누수, 녹조, 수질 악화 문제에 시달렸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 또한 2009년부터 대규모 보수 작업을 진행했지만 각종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는 못했다.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이 연못의 아름다운 색깔을 유지하려면 연못의 물이 사실상 가득 차야 하지만 배관 문제와 누수로 일정 수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노후 배관 교체 없이 백약무효

트럼프 대통령이 유독 이 연못의 보수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워싱턴 전체에 자신의 흔적을 남기려는 듯한 그의 최근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수도의 상징적 공간에 자신만의 미적 취향과 정치적 메시지를 투영한 일종의 ‘치적 사업’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재집권 후 백악관 내 대형 연회장 건설, 워싱턴의 유명 문화공연장인 케네디센터의 개보수, 각종 기념물과 분수 복원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케네디센터에는 자신의 이름을 붙여 ‘트럼프-케네디센터’로 바꾸려다 최근 법원이 중단을 명령해 모양새를 구겼다.

트럼프 행정부는 콘크리트 바닥과 신축 이음부를 보수해 누수와 조류 문제를 상당 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공사를 맡은 업체는 콘크리트 틈새에 특수 폼을 삽입한 뒤 밀봉재를 덧바르는 방식으로 누수를 차단하고 있다. 여기에 푸른색 코팅을 입혀 미관 개선 효과까지 기대한다.

다만 전문가들은 이런 공사만으로는 문제의 근본적 해결이 어렵다고 지적한다. 반사 연못과 정수 처리 시설을 연결하는 노후 배관의 교체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배관 공사를 올가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밝혔지만 구체적인 일정과 예산은 공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여름철 녹조가 다시 번식하기 시작하면 새로 칠한 ‘성조기 블루’ 바닥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탁한 녹색 물 아래 가려질 것으로 우려한다. 일부 조경·보존 전문가들이 “이번 공사는 전형적으로 시각적 효과에만 치중한 사업”이라고 비판하는 이유다. 배관 교체 없이 바닥 색깔만 바꾸는 방식은 오래가기 힘들다는 것이다.

공사 비용을 둘러싼 논란도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비가 최대 200만 달러(약 31억 원) 수준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미 1480만 달러(약 219억 원)의 각종 계약이 체결된 상태다. 그럼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에도 백악관에서 취재진에게 “특수 소재를 사용해 적은 비용으로 연못의 문제를 해결했다”며 공사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개선 노력 의미” vs “고물가부터 해결”

연못 인근에서 만난 시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버지니아주 알링턴에 거주한다는 올리비아 씨는 “예전부터 연못 색깔이 탁하고 관리가 안 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전 세계 관광객이 찾는 미국 수도의 상징 공간인 만큼 개선하려는 노력 자체는 의미가 있다”고 호평했다.

반면 메릴랜드주 주민 라이언 씨는 “고유가와 물가 상승으로 국민들이 힘든 상황인데 대통령이 이런 사업을 추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연못이 무슨 색으로 보이는지가 그렇게 중요한 문제냐”고 반문했다.

급기야 워싱턴의 비영리단체 ‘문화경관재단’은 연못 바닥을 코팅한 게 이 연못을 평범한 ‘테마파크’처럼 보이게 만들 수 있다며 중지해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원래 연못 바닥의 중성 계열 색상은 수면을 더 깊고 차분하게 보이도록 설계됐는데, 푸른색 바닥이 링컨기념관과 워싱턴기념탑을 잇는 엄숙한 경관 축 자체를 훼손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자칫 반사 연못이 ‘거대한 수영장’처럼 보일 수 있다고 우려했다. WP 또한 일부 누리꾼들이 인공지능(AI)으로 만든 반사 연못의 이미지를 트럼프 대통령이 소유한 리조트 내 수영장처럼 표현하며 대통령을 비판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논란도 한창이다. 반사 연못이 위치한 워싱턴 내셔널몰에서 대규모 공사를 진행하려면 통상 연방 심의기구의 검토, 시민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 때로는 의회 승인도 필요하다. 그런데도 대통령의 일방적 지시로 공사가 전광석화처럼 추진됐다는 점을 문제 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이란 전쟁 장기화, 고유가 등으로 고전 중인 트럼프 대통령이 유권자들에게 눈에 보이는 성과를 제시하기 위해 일부러 이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판을 제기한다. NYT 또한 이번 사업을 두고 “워싱턴을 재편하려는 트럼프의 최신 프로젝트”라고 꼬집었다.

워싱턴=신진우 특파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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