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세일즈포스·SAP "AI로 기술 방벽 붕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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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세일즈포스·SAP "AI로 기술 방벽 붕괴"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기업에 투자한 벤처 투자자들이 절망하고 있다.”

요즘 실리콘밸리에서 유행하는 말이다. 디지털 혁명을 주도하던 세일즈포스, SAP 등의 SaaS 기업이 인공지능(AI)으로 무장한 신흥 도전자들에 텃밭을 잠식당하면서 존립마저 위태롭다는 분석이 나온다. 게다가 오픈AI 등에 AI 모델을 빌려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 이익마저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다.

◇ 차별화 실패한 AI에이전트

3일(현지시간) 데이터관리 SaaS 기업인 스노플레이크는 올해 3분기 매출이 전년 대비 29% 증가한 12억1000만달러(약 1조7800억원)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시장 추정치인 11억8000만달러보다 높았지만 주가는 장외에서 8% 넘게 하락했다. 슈리다 라마스워미 최고경영자(CEO)는 “AI에이전트 ‘스노플레이크 인텔리전스’가 역사상 가장 빠른 도입률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블룸버그통신은 “AI 비용에 대한 공포가 성장 기대를 압도했다”고 분석했다.

스노플레이크의 사례는 AI 시대 SaaS 기업들이 처한 공통적인 상황을 보여준다는 평가다. 이들은 고객관계관리(CRM), 인사관리(HR), 정보기술(IT) 등 소프트웨어를 기업에 구독 상품으로 제공하며 급성장했는데 최근 흐름이 꺾이고 있다. 이들이 보유한 ‘기술 해자’가 AI의 등장으로 약해지면서다. AI 스타트업 튜링의 조너선 싯다르트 CEO는 지난 1일 팟캐스트에서 “이제는 대규모언어모델(LLM)을 기반으로 애플리케이션을 구축하기가 정말 쉬워졌다”며 “대부분의 기업은 맞춤형 소프트웨어를 아주 쉽게 개발하기 시작할 것”으로 전망했다. 구태여 백화점에서 명품을 연간 고비용으로 구독할 필요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자체 제작 소프트웨어는 범용 SaaS 소프트웨어와 달리 금융, 의료, 법조 등 각 분야에 맞게 조율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 “방대한 데이터가 해자” 반론도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SaaS 기업들의 해결책은 AI에이전트다. 상담, 채용, 인사 관리 등 각 업무 영역에 ‘AI 직원’을 투입해 고객사의 인건비를 줄여주겠다는 전략이다. 문제는 AI에이전트 간 차별점이 뚜렷하지 않다는 점이다. SaaS 기업들이 사실상 오픈AI, 앤스로픽, 구글 등 빅테크의 파운데이션 모델을 바탕으로 AI에이전트를 제작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AI에이전트가 작동할 때마다 모델 개발사에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터라 예전만큼의 영업이익률을 달성하기 어려운 구조다.

SaaS 기업들이 축적한 방대한 데이터가 방어막이 될 것이란 반론도 만만치 않다. 베세머벤처파트너스는 8월 보고서에서 “기업 고객의 속사정을 가장 잘 아는 SaaS업체와 단숨에 관계를 끊는 것은 마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다”며 “(사용자 정보에 대한) 맥락과 기억은 AI 앱 개발자들에게 새로운 해자가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벤처캐피털 20VC 창업자인 해리 스테빙스도 “AI로 누구나 앱을 개발할 수 있지만 소프트웨어는 만드는 게 끝이 아니라 유지·관리가 더 어렵다”며 “청소업체, 레스토랑, 법무·회계법인 등이 자체 시스템을 구축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세일즈포스는 3분기 실적을 통해 그간 주가를 짓누르던 SaaS 비관론을 일부 털어냈다. AI에이전트인 에이전트포스의 연간반복매출(ARR)이 전년 대비 330% 증가한 5억4000만달러를 기록한 것이다. 마크 베니오프 CEO는 이날 콘퍼런스콜에서 “많은 기업이 AI 서비스를 자체 개발하려고 시도했지만 매우 어려워하고 있다”며 “세일즈포스 같은 기업에는 좋은 소식”이라고 밝혔다.

실리콘밸리=김인엽 특파원 insi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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