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앞두고 한반도 정세가 다시 들썩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 속에 열려 주목받는 이번 회의 기간에 미·중 정상회담이라는 대형 이벤트가 예정됐고, 그 밖에도 아태 주요국 정상 간 회담도 잇달아 열린다. 폭풍전야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방한을 앞두고 또다시 북한을 '일종의 핵보유국'(sort of a nuclear power)으로 규정하면서 심상치 않은 파장이 일고 있다. 지난 1월 취임사를 시작으로 벌써 세 번째 핵보유국 언급이니 의도된 것으로 봐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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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문점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에서 만나 인사한 뒤 남측 지역으로 이동하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2020.1.1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트럼프 대통령의 핵보유국 발언은 다분히 계산됐다는 게 정설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연락한다면 이번 방한을 계기로 만나고 싶다는 뜻을 핵보유국 언급과 엮어서 드러냈기 때문이다. 최근 김 위원장이 핵보유국 지위 인정을 북미 회담의 전제 조건으로 내건 데 대한 화답으로도 볼 수 있다. 지난 2019년 즉석 이벤트처럼 성사됐던 미북 정상 회동의 재판을 노리는 듯 보인다. 현재 아시아를 순방 중인 트럼프 대통령은 계속 러브콜을 보내는 중이다. 귀국 연기 여지를 열어놓은 데다 심지어 재집권 이후 처음 대북 제재 완화를 공식 거론하며 김 위원장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집권 2기인 트럼프 대통령은 노벨평화상을 원한다고 알려져 있다. 중동과 우크라이나 등에서 해결사로 역할 했다며 성과를 부각 중인 상황에서 한반도 긴장 완화의 중재자로서 결정타를 날리고 싶을 수 있다. 한미 양국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 이후 일제히 비핵화 목표에 흔들림이 없다는 원칙적 입장을 재확인했다. 하지만 집권 1기 때엔 트럼프 대통령이 핵보유국을 언급하거나 비핵화 원칙 자체를 흔들진 않았다. 우리 당국은 이런 미묘한 변화를 정교하게 주시해야 한다. 혹여라도 미북이 당사국인 우리를 배제한 채 모종의 빅딜을 도모할 가능성이 추호라도 없는지 거듭 살피고 확인해야 한다. 적어도 안보 분야에선 미세한 위기 신호조차 놓치지 않고 대비하는 게 기본 매뉴얼이다.
미국이 북한의 '뉴클리어 파워' 비공식 지위를 암묵적으로 인정한다면 한반도를 넘어 아시아 질서 자체가 상전벽해의 변화를 맞게 된다. 현재로선 개연성은 떨어진다는 게 전문가들 판단이지만 방심할 수만은 없다. 만에 하나 이런 일이 일어나면 북한 핵보유국 지위 부정에 기반한 한반도 비핵화 전략도 폐기된다. 미국은 본토 안보에 집중해 제재 완화를 대가로 북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폐기에 초점을 맞출 것이고 북한은 미·중·러 사이에서 줄타기하며 정상 국가 복귀에 속도를 내는 전략을 택할 수 있다. 이는 아시아 안보 질서의 지각변동을 뜻한다.
현재 공식 핵보유국은 미국, 러시아, 중국, 영국, 프랑스 5개국이다. 이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통해 다른 나라들의 핵무장을 봉쇄했다. 그러나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은 비공식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다. 이란의 경우 오랜 시도에도 핵을 갖는 데 실패했다. 우크라이나는 강대국의 안전 보장 약속을 믿고 핵무기를 전량 폐기했는데, 이후 크림반도를 잃었고 지금은 러시아의 침공을 받고 있다. 이런 역사는 생존에 애타는 북한 정권에 교훈을 안겼다. 기술적으로 북한은 핵무장에 성공했다고 평가되지만,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는 '눈 가리고 아웅' 식으로 뾰족한 대책 없이 외면할 뿐이다. 그러니 언제든 미래에 북한이 비공식 지위를 인정받을 확률은 원칙적으로 상존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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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현지지도 아래 2024년 10월 31일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포-19형' 시험발사를 성공적으로 단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이날 시험발사에 딸 주애도 참관했다. 202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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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핵 능력을 더 키운 데다 근래에 러시아, 중국과 밀착하며 국제 제재의 틈을 파고든 북한이 트럼프 1기 때와 달리 제재 완화 카드에 큰 매력을 못 느낄 거란 분석도 많다. 오히려 북한은 핵 능력을 더욱 고도화하고 러시아·중국과 우호 관계를 한동안 계속 강화함으로써 협상력을 한층 높인 뒤에 미국과 빅딜을 시도할 가능성이 있다. 북한 핵보유국 인정이 일본과 한국 등 주변국 핵무장을 부추기고 역내 군사력 경쟁을 가속해 결과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도움이 안 될 거란 견해도 있다. 미국이 주도한 질서인 NPT 체제도 흔들리게 된다. 어찌 됐든 지금 국제 질서는 소수 핵보유국 간 상호억제력을 축으로 돌아간다. '두 국가론'을 선언한 북한이 이런 '프리미어 리그'에 들어간다는 건 상상하기도 싫은 시나리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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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29일 05시59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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