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곡로] '엡스타인 섬'에선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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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연합뉴스) 이승우 선임기자 = '엡스타인 리스트'의 실체 여부와 연루 인사가 누구인지는 오랫동안 미국 정·재계를 흔들어온 대형 이슈다. 이 리스트는 억만장자였지만 미성년 성착취범으로 드러나 복역 중 자살한 제프리 엡스타인의 범죄에 연루된 사람들의 명단을 일컫는다. 특히 엡스타인의 미확인 이메일 기록 등을 통해 유명 정치인, 기업인, 관료, 연예인 등의 이름이 흘러나와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앤드루 영국 왕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주, 미 좌파 진영의 정신적 지주인 노엄 촘스키, 로런스 서머스 전 하버드대 총장 등까지 거명되면서 이 문제는 미국 사회를 뒤집을 메가톤급 폭탄으로 떠올랐다.

이미지 확대 '엡스타인 미성년 성착취' 브리핑 하는 검찰

'엡스타인 미성년 성착취' 브리핑 하는 검찰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재배포 DB 금지]

미 법무부는 몇 달 전 '엡스타인 리스트'라는 건 없다고 발표했다. 의문이 제기된 엡스타인의 사인 역시 자살이 맞는다고 재확인했다. 하지만 이를 믿을 수 없다는 듯 음모론들이 여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자 최근 미 의회는 연방 사법기관들이 보유한 엡스타인과 그의 공범 길레인 맥스웰에 관련된 기밀 해제 문서, 통신 및 수사 기록을 모두 공개하도록 강제한 법안을 의결했다. 민주당으로부터 리스트 관련자로 공격받아온 트럼프 대통령은 법안에 서명했다.

이로써 엡스타인 사건 관련 기록들이 늦어도 다음 달 중순 대중 앞에 드러나게 된다. 어떤 거물급 인사가 거명될지, 공화당과 민주당, 좌우 진영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타격을 받을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다만 법무부가 피해자 이름, 수사를 방해할 수 있는 정보 등은 비공개할 권한을 가진 만큼 별 볼 일 없는 결과가 나올 거란 관측도 적지 않다. 특히 이 사건과 관련해 여야 양쪽 정치인들이 고루 거론됐다는 점에서 정치적 물타기 가능성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엡스타인을 만난 적 있으나 "역겨운 변태"로 판단해 멀리했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자신을 공격하는 민주당 인사들이 엡스타인으로부터 돈을 받았다고도 했다. 그는 엡스타인이 민주당원으로서 민주당에 기부해왔고, 인맥 역시 모두 민주당과 리버럴이라고 강조하면서 '진실'이 공개되면 민주당이 역풍을 맞을 거라 자신한다. 일각에선 과거 엡스타인이 기소되도록 주요 정보를 제공했던 인물이 트럼프이며, 일부러 민주당을 함정으로 유인한 거란 주장도 나온다.

엡스타인의 생애, 그가 일으킨 여러 사건, 등장인물, 파장 등이 워낙 극적인 데다 자극적이기까지 해 소설보다 더 소설 같다는 관람평이 나온다. 가장 영화 같은 음모론은 엡스타인이 사실 이스라엘 첩보기관인 모사드의 요원이란 설이다. 평범했던 청년이 금융권 억만장자가 돼 돈을 물 쓰듯 뿌리고 요인들을 호화 아지트에 전용기로 데려와 친교를 나눌 수 있었던 것 자체가 거대한 기관의 후원이 있지 않고선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합리적 의심이긴 하다. 이런 논리를 근거로 나온 모사드 배후설은 엡스타인과 그의 연인 맥스웰이 유력 인사들을 더러운 추문에 끌어들여 약점을 잡은 뒤 이스라엘 이익을 관철했으며, 훗날 이런 공작이 발각될 위기에 처하자 엡스타인을 살해했거나 자살을 강요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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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의사당

(EPA=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미국 하원의 '엡스타인 파일 공개' 법안 표결을 앞두고 워싱턴DC의 의사당 앞에 관련 기자회견을 위한 연단이 설치돼 있다. 2025.11.18

엡스타인이 미국 권력자들과 상류층 유력 인사들을 데려와 행사나 파티를 주로 연 곳이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에 소유했던 두 개의 섬이다. 뉴욕 맨해튼 저택과 플로리다 팜비치 별장도 이런 목적으로 사용됐다고 한다. 엡스타인은 이들 장소에서 미성년 성 착취와 인신매매를 한 것으로 밝혀져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특히 미국에선 '아동 성애'가 가장 반인륜적 중범죄로 여겨지는 데다 유력 인사 관련 의혹까지 얽혀 충격과 관심은 더 커졌다. 이제 '엡스타인 X파일'의 공개 시기가 머지않았다. 그 섬에선 대체 누가 무슨 일을 저질렀던 걸까.

leslie@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1월25일 09시53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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