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전쟁으로 중국의 부상이 물 위로 드러났다. 중국은 군사 개입을 하지 않았지만 에너지, 금융, 외교 네트워크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란산 원유는 우회적으로 흡수됐고, 일부 거래에서 위안화 결제가 확대됐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거부권을 통해 제재 작동을 제한할 수 있는 능력을 확인했으며, 중국 외교 네트워크는 휴전 중재 채널로 작용했다. 수십 년간 경제를 키우고 네트워크를 구축한 결과 중국은 이제 미국 주도 시스템의 작동을 필요할 때 제약할 수 있는 위치에 가까워지고 있다.
미국은 앞으로 중국과의 전략 경쟁을 더 넓고 깊게 전개할 것이다. 국내 산업 기반 확충, 해양 인프라와 글로벌 순환 시스템 장악에 많은 자원을 투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동맹에 대한 요구도 커질 것이다. 한국에는 한반도 안보를 주도하고, 기술 통제, 공급망 구축, 제재 이행, 역외 위기 대응 확대를 기대할 것이다. 중국은 한국이 미국 구상에 깊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견제할 것이다.
한국은 이번 전쟁에서 최대 피해국의 하나가 됐다. 한국은 시스템에 깊게 편입된 ‘노드(node·단위)’이지만, 이를 통제하지는 못한다. 중동 에너지 의존, 에너지 다소비 산업, 금융·무역의 높은 개방도가 이런 구조를 만든다. 안보 의존은 선택지를 더 좁힌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한국은 시스템 안에 있지만, 이를 통제하기보다 변화에 대응하려고 한다. 그래서 선택하기보다 선택을 당한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미국도 전략적 일관성이 부족해 보이는 만큼, 우리 국익을 중심에 둔 논리 구성이 필요하다.첫째, 한반도 안보 책임을 확대해야 한다. 재래전력 확충과 전작권 전환을 추진하고, 미사일 방어, 정보·감시(ISR), 탄약 비축, 해상 수송, 방산 등 실질적 동맹 강화에 주력해야 한다. 개전 초기에 경북 성주에 배치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포대가 중동으로 이동한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둘째, 기술·산업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미국은 산업 기반 재건, 공급망 안정, 해양 시스템 통제 역량이 필요하고, 한국은 첨단 제조업, 조선·해양·반도체·방산 역량이 있다. 단, 이 협력이 한국 제조업의 일방적 미국 이전으로 끝나면 안 된다. 한국은 생산을 넘어 시스템 설계 참여로 옮겨 가야 한다. 즉, 한국이 빠지면 시스템 작동 비용이 커지는, 곧 대체 불가능한 위치를 확보해야 한다.
셋째, 중국과는 실용적 관계 관리가 필요하다. 수출의 20%가 향하고 희토류의 70%가 들어오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이 연결이 차단되면 우리 제조업이 멈출 수도 있다. 미국이나 일본이 해결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2025년 8월 방미에서 “안미경중(安美經中)이 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이제 전략적 모호성은 답이 아니다. 그렇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요구를 하나하나 충성 시험으로 볼 일도 아니다. 트럼프 특유의 거래 제안이자 교환 조건의 문제다. 지금 한국에 필요한 것은 이 조건을 설계하는 능력이다.조병제 전 국립외교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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