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말저런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제목을 다시 쓴다면

1 week ago 5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중략) 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37℃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옥중서간)에 실린 '여름 징역살이' 한 토막이다. 20년여간 징역을 산 사람이 전하는 진실은 서늘하다. 읽을 때마다 숙연해지고 먹먹해진다. 서두를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으로 뗀 덴 까닭이 있다. 겹조사를 피하자고 말하려 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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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으로부터의 사색 한정판

[돌베개 제공]

어느 날, 글감을 캐려 자료를 파다 일화를 하나 찾았다. 조사를 세 개(으로+부터+의)나 붙여 쓴 제목 달기 경위를 궁금해하곤 했는데 이를 풀어줄 단서를 얻은 것이다. 생전에 문익환 신영복 이오덕, 이들 셋이 함께한 자리가 있었다. 우리말이 잘못돼 간다는 얘기가 나올 때 문익환이 신영복에게 "참 좋은 책인데, 책 이름을 왜 그렇게 붙였는가요?" 하고 묻는다. 이에 "저는 그 책이 나오는 줄도 몰랐습니다"고 한 신영복의 답에 문익환은 무릎을 탁 친다. "그러면 그렇지! 신 선생 같은 분이 그런 말을 썼겠나"라며 '뭐로 제목을 달고 싶었나' 하자, 신영복은 "다시 쓰고 싶은 편지"라고 말한다. 각각 히브리어 등 구약성서 원어, 한문, 우리말에 달통한 언어 대가였던 세 인물의 대화가 귀하다.

∼으로부터의 외에 '∼에의', '∼로의' 같은 겹조사가 쓰이는 것을 본다. 부자연스러우니까 되도록 쓰지 말자는 국어책의 조언에 귀 기울이자. 문장론을 다룬 한 책이 든 OX 사례를 보자. 윤동주로의 추억(X) 대신 윤동주를 추억함(O) 하자고 한다. 예는 많다. 과거로부터의 혜택(X) 말고 과거의 혜택(O) 하면 족하다. 미래 공습에의 대비(X) 하지 않고 미래 공습 대비(O) 또는 미래 공습에 대한 대비(O) 한다. 강에서 약으로의 변화가 관건이다(X) 하는 표현보다 강에서 약으로 변화하기가 관건이다(O) / 강에서 약으로 변화하는 것이 관건이다(O) 같은 표현이 더 우리 말답다는 견해도 참고한다. (서울=연합뉴스, 고형규 기자, uni@yna.co.kr)

※ 이 글은 다음의 자료를 참고하여 작성했습니다.

1. 이오덕, 『우리말을 죽이는 서양말 뿌리 뽑기』, 도서출판 고인돌, 2019, pp. 70-71. '(으)로부터의'라는 말 중에서 문익환 목사 신영복 선생 이오덕 선생 대화 내용 발췌 인용

2. 장제원, 『비문 클리닉』, 몽트, 2024, p. 36. 부자연스러운 겹조사

3. 표준국어대사전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1월27일 05시55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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