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연의 돌봄과 실버사회] 기술이 돌본다는 착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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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서연의 돌봄과 실버사회] 기술이 돌본다는 착각

2024년 기준, 정부는 독거노인과 고령 장애인을 대상으로 디지털 기술 기반 돌봄 서비스를 전국으로 확대하고 있다. 낙상 감지 센서, 인공지능(AI) 스피커 안부 확인, 약 복용 알림 기기, 비대면 모니터링 시스템 등 이른바 ‘스마트 돌봄’은 이제 노인 복지 정책의 주류 언어가 됐다. 보건복지부의 노인 맞춤 돌봄서비스 사업에도 정보통신기술(ICT) 기기 활용이 포함돼 있다. 각 지방자치단체는 경쟁적으로 AI 돌봄 플랫폼 도입을 선언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혁신’의 이면을 충분히 묻지 않는다. 기술 기반 돌봄은 진짜로 사람을 대신하고 있는가. 기계는 스스로 켜지고, 스스로 연결되며, 스스로 수리되는가. 그렇지 않다. 모든 기계는 작동하기 위한 조건을 요구한다. 기기를 설치한 뒤 와이파이에 연결하고, 앱과 동기화하고, 펌웨어를 업데이트하고, 오류가 발생하면 재부팅하는 일 등이 선행될 때 비로소 기술이 사람을 돌본다. 기술을 활용한 돌봄은 무인 서비스가 아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인간의 노동 위에서만 작동하는 시스템이다. 우리가 그 노동을 보지 못하는 이유는 처음부터 그것이 제도 안에 없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기술을 작동하게 하는 노동을 누가 수행하는지에 있다. 돌봄을 받는 노인은 디지털 역량이 가장 취약한 집단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한국지능정보사회진흥원(NIA)의 ‘2025년 디지털 정보격차 실태조사’에 따르면, 55세 이상 고령층의 디지털 정보화 수준은 일반 국민 대비 71.89%에 불과했다. 특히 디지털 기기 활용 역량은 취약계층 중에서도 고령층이 가장 낮았다. 스마트폰 본인인증 앞에서 멈추는 어르신에게 “앱 재설치 후 블루투스를 재연결하세요”라는 안내문은 외국어와 다름없다.

그렇다면 기술을 돌보는 노동은 누가 하는가. 자녀가 곁에 있으면 자녀에게, 자녀가 없으면 현장의 돌봄 노동자에게 간다. 요양보호사와 생활지원사, 사회복지사가 어르신을 보살피는 일에 더해, 기계를 돌보는 일까지 떠안게 된 것이다.

낙상 감지기가 오작동하고, 약 복용 알림이 멈추고, 통신망이 끊길 때 가장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곳은 돌봄 현장의 최전선이다. 그러나 현행 요양보호사 자격 제도와 직무 기준 어디에도 ‘디지털 기기 유지·관리’는 공식 직무로 명시돼 있지 않다. 추가된 노동은 있으나, 그에 상응하는 교육과 보상은 없다. 보이지 않는 노동을 보이지 않게 두는 것, 이것이 우리 돌봄 시스템의 민낯이다.

세 가지 방향의 재설계가 필요하다. 첫째, 기술을 활용한 돌봄을 ‘유지·관리 노동이 내장된 서비스’로 재정의해야 한다. 현재 기기 보급 예산은 하드웨어 구매에만 집중돼 있다. 설치·점검·기술지원 인력 비용이 정책 설계 단계부터 포함돼야 한다.

둘째, 기기 유지·관리의 책임을 사적 영역(가족·현장)에서 공적 영역으로 이전해야 한다. 통신사가 인터넷 장애를 공적으로 수리하듯, 공공이 책임지는 디지털 돌봄 유지·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일부 지자체에서 시범 운영 중인 ‘ICT 돌봄 코디네이터’ 모델은 그 가능성을 이미 보여주고 있다.

기술이 돌봄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은 기반(infrastructure) 없이 작동하지 않는다. 그 기반을 구축하고 유지하는 것은 바로 인간의 노동이고, 그 노동을 공적으로 인정하고 지원하는 것이 국가의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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