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프리즘] 지금 환율, 오버슈팅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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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프리즘] 지금 환율, 오버슈팅이 아니라면

환율은 신(神)의 영역이다. 날고 기는 전문가라도 1450원을 웃도는 원·달러 환율이 한 달 뒤 1350원이 될지, 1550원이 될지 자신있는 답을 내놓지 못한다. 수많은 대내외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환율의 단기 흐름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질문이 있다. 지금의 고환율이 시장 심리와 단기적 수급 쏠림에 따른 ‘오버슈팅’인지, 한국 경제의 펀더멘털을 반영한 ‘뉴노멀’인지 여부다.

적어도 외환당국은 오버슈팅이라고 믿고 싶은 눈치다. 경제부총리와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주 약속이나 한 듯 국민연금의 해외 투자에 ‘뉴 프레임’이 필요하다고 압박하고 나섰다. “쿨해서, 유행처럼 해외에 투자하고 있다”는 서학개미도 환율을 밀어 올리는 공범으로 지목됐지만, 정부가 개인의 해외 투자를 막을 방법은 요원하니 국민연금이 환율 안정 대책의 1호 타깃이 됐다.

외환당국의 바람대로 국민연금이 환헤지를 재개해 시장에 달러를 풀면 환율은 하락할 게 분명하다. 800조원의 해외 자산을 보유한 국민연금의 힘은 막강하다. 문제는 만약 원화 약세가 구조적이란 점이 확인될 때다. 5년 뒤 혹은 10년 뒤 원·달러 환율이 1500원, 2000원인 시대가 온다면 눈앞의 환율 안정을 위해 국민의 노후 자금을 희생시켰다는 비판이 불가피하다.

그런 관점에서 국민연금이 10여 년 전 환헤지를 중단하고 ‘자연 헤지’ 전략을 도입한 건 ‘신의 한 수’다. 자연 헤지의 핵심은 분산투자다. 미국 달러,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등 다양한 통화로 투자 자산을 분산해 원화 가치가 하락해도 끄떡없는 포트폴리오를 구축했다. 환변동은 단기적으론 수익률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지만 10년 이상 장기로 보면 수익률에 미치는 효과가 ‘0’에 수렴한다는 게 국민연금 연구원의 연구 결과다.

인위적 환헤지는 이 같은 자연 헤지의 효과를 경감시킨다. 게다가 매년 조 단위로 발생하는 헤지 비용은 누적적으로 수익률을 갉아먹는다.

외환당국의 답답함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국민연금을 언급하는 것만으로도 투기 심리를 억누르는 구두 개입 효과를 노렸을 수도 있다. 하지만 위험한 서사가 형성된다는 점은 문제다. ‘국민연금 탓에 환율과 물가가 올라 민생이 어려워진다’는 서사는 현상의 극히 일부만을 확대해 사실을 왜곡할 뿐 아니라 악의적이기까지 하다. 시장이 주목하는 진짜 거시경제 스토리를 은폐하기 때문이다.

시장의 관심은 결국 성장 잠재력과 재정 건전성에 있다. 미국에 뒤처지는 성장률은 한·미 간 금리차를 고착화한다. 구조적 원화 약세 요인이다. 고령화로 복지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게 뻔한 상황에서 국채 발행을 늘리는 정부의 재정 확장 정책을 글로벌 투자자는 불안한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올 하반기 들어 국채 금리와 환율이 동반 상승하는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최근 한국경제신문이 기업, 학계, 금융권의 외환전문가 1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환율 안정 대책(복수응답)으로 ‘규제 완화, 고용 유연성 제고를 통한 기업 투자 유도’(48명)를 가장 많이 꼽았다. 2위가 ‘확장 재정 속도 조절 및 재정 건전성 확보’(35명)였다. 국민연금이 해외 투자 속도를 줄여야 한다는 응답은 9명에 그쳤다.

외환당국이 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을 끌어들여 ‘환율 안정 4자 협의체’를 꾸린 건 앞서 언급한 악의적 국민연금 서사를 강화할 뿐이다. 진짜 원화 가치를 지키고 싶다면 협의체의 판을 키워야 한다. 고용노동부,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규제개혁위원회, 내년 초 출범할 기획예산처, 총리실, 그리고 이 모든 전략의 최종 결정권자인 대통령실이 머리를 맞대 원화의 매력도를 높이는 국가 전략을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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