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워치] 닫히는 기회의 문, 끊어지는 사다리

1 month ago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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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격차 (CG)

[연합뉴스TV 제공]

(서울=연합뉴스) 김지훈 선임기자 = '개천에서 용 난다'는 옛말은 말 그대로 옛말이 돼버린 것일까. 처한 환경이 열악하고 어렵더라도 불굴의 의지와 노력으로 사회적·경제적 성공을 이뤄내는 것을 의미하는 속담이지만, 우리 사회의 현실에선 점차 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있다. 이젠 그 말의 빈자리를 '금수저·은수저'나 '끊어진 사다리'라는 말들이 채우고 있다.

최근 국가데이터처의 통계를 보면 지난 2023년 소득분위가 전년보다 상승한 사람이 17.3%에 불과했다. 관련 통계 집계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1년 내내 어렵게 일해서 번 소득으로 계층이 높아진 사람이 10명 중 2명에도 미치지 못했다는 의미다. 소득분위 상승 비율은 2020년 18.2%에서 이듬해 17.6%로 떨어지는 등 3년 연속 하락했다. 소득이 가장 낮은 1분위를 벗어날 수 있는 탈출률도 3년째 떨어져 역대 최저(29.9%)를 기록했다. 소득분위가 유지된 비율은 고소득층인 5분위가 85.9%로 가장 높았고 저소득층인 1분위도 70.1%로 뒤를 이었다. 고소득층으로 진입하면 하락할 확률이 낮고 저소득층으로 떨어져도 재기할 가능성이 크지 않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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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개발이 한창이던 시기부터 우리 사회에서 교육은 신분 상승의 가장 확실한 사다리였다. 어려운 여건에서도 공부만 열심히 하면 여러 제도적 지원을 통해 서울도 진출하고 좋은 직장과 집에서 거주할 수 있는 여건이었던 시기가 있었지만 최근 통계는 '금수저·은수저'론(論)을 뒷받침할 뿐이다.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재학생의 40%가량이 고소득층 자녀들이고 국내 의대생의 절반가량인 48%가 소득 상위계층의 자녀라는 통계가 이미 몇 년 전의 얘기다.

최근엔 부동산 시장의 사다리도 논란이다. 서울과 경기 일부 지역 아파트를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고 대출까지 조이는 10·15 부동산 대책 이후 실수요자들의 내 집 마련이나 상급지 갈아타기의 사다리가 끊겼다는 지적이다. 대출을 받아 살고 싶은 집에 입주한 뒤 성실히 갚아나갈 수 있는 기회의 문이 아예 닫혀 버렸다는 아우성이 거세다. 내 집 마련을 위해 노력 중이던 실수요자들에겐 '같은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앞세대의 사다리 걷어차기'로 비칠 수밖에 없다.

이미지 확대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 상승 기대 4년 만에 최고

부동산 대책에도 집값 상승 기대 4년 만에 최고

(서울=연합뉴스) 김인철 기자 = 정부의 연이은 부동산 대책에도 소비자들의 집값 상승 기대는 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난 28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서울 도심 아파트 모습.
이날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 결과에 따르면 10월 주택가격전망지수는 122로 전월보다 10포인트 상승했다. 2025.10.28 yatoya@yna.co.kr

게다가 국내 투자자들을 열풍에 휩싸이게 만든 '에브리싱 랠리'는 투자를 통해 자산을 만들 기회가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론 자산가만 돈을 버는 불평등을 확대하고 '빈익빈 부익부'로 인한 소외감을 더욱 부추길 소지도 있다. '나만 소외될지 모른다'는 'FOMO'(Fear Of Missing Out) 심리가 번지면 주식시장의 신용융자잔고 급증세가 보여주듯 빚을 내 투자하는 사례가 늘어 추후 사회 문제로 번질 가능성을 걱정해야 한다.

교육과 소득, 주거의 사다리는 우리 사회의 계층 이동 통로를 대표하는 상징이었다. 이 사다리가 끊기고 상승 기회의 문이 점차 닫혀가는 것은 우리 경제의 성장뿐 아니라 사회 통합과 역동성에도 걸림돌이 될 뿐이다. 특히 대학 진학부터 취업, 결혼, 내 집 마련까지 모든 것이 어렵고 치열한 경쟁인 우리 청년들에겐 끊긴 사다리를 복원해주는 일이 시급하다. 교육과 소득·주거의 불평등을 해소하고 기회의 문을 더 활짝 열어 노력하면 가능하다는 신뢰를 심어주는 것이 사다리 복원의 핵심 과제다.

hoonkim@yna.co.kr

제보는 카카오톡 okjebo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AI 학습 및 활용 금지> 2025년10월29일 06시00분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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