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TSMC 취재한 린훙원 "정부 지정 육성 산물 아냐"
"대만은 산업 공급망 생태계·한국은 재벌 중심 수직통합"
"TSMC 2나노 수요 역사적으로 가장 강력한 수요 맞아"
[아이뉴스24 권서아·박지은·황세웅 기자] "TSMC의 부상은 정부의 지정 육성 산물이 아니에요. 그보다 산업 생태계가 오랜 기간 축적한 경쟁력의 결과라고 봐야 합니다. 기업 경쟁력은 결국 스스로 구축해야 하는 거고요."
'거물기업 삼성'(2012)과 'TSMC 세계 1위의 비밀'(2024)이란 저서로 국내 반도체 업계에도 이름을 알린 대만 경제지 '금주간'(今周刊·비즈니스 투데이)의 린훙원(林宏文) 고문은 TSMC가 세계 최고 파운드리 기업이 된 비결에 대해 최근 아이뉴스24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진단했다. 그는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 TSMC를 30년 넘게 취재한 이 분야 전문가다.
린훙원 금주간(대만 경제지) 고문이 자신의 저서 'TSMC 세계 1위의 비밀' 한국어판을 들고 있다. [사진=린훙원]"대만은 산업 공급망 생태계…한국은 재벌 중심 수직통합 모델"
린 고문은 한국과 대만을 "전 세계 과학기술 산업 발전의 모범생"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대만은 산업 공급망 생태계 모델이고 한국은 재벌 중심 수직통합 모델"이라며 "한국은 소수 기업을 중심으로 자원을 빠르게 동원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기업의 성패가 산업 전체에 미치는 영향도 크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기업 경영에 개입하기보다 토지와 세제, 인재를 공급하는 '환경 조성자' 역할에 집중한다"며 "TSMC 역시 정부가 만든 기업이라기보다 생태계가 키운 기업에 가깝다"고 평가했다.
그는 "대만 반도체 산업은 특정 기업 하나가 아니라 설계와 제조, 패키징(후공정), 소재·장비 기업이 함께 성장하는 구조"라며 "기업 경쟁력 역시 시장에서 검증받으며 구축돼 왔다"고 덧붙였다.
TSMC 본사인 모리스 창 빌딩. [사진=황세웅 기자]"파운드리 사업은 대만과 한국 격차 벌어져"
30년 넘게 TSMC를 취재한 린 고문은 삼성의 전성기와 TSMC의 부상을 모두 지켜본 인물이다.
그는 "2012년 삼성 책을 집필할 당시만 해도 삼성은 대만 D램과 액정표시장치(LCD) 산업을 모두 물리칠 정도로 강했다"며 "당시 대만은 삼성에 패배했고 많은 제조업체들이 중국으로 이동하면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고 회상했다.
당시 모리스 창 TSMC 창업자도 삼성을 "두려운(Formidable) 경쟁자"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금은 양사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린 고문은 "과거 TSMC 54%, 삼성 26% 수준이던 파운드리 점유율은 현재 TSMC 72%, 삼성 7% 수준으로 바뀌었다"며 "웨이저자 회장이 최근 삼성의 추격론에 대해 '경쟁사들이 사실상 꿈을 꾸고 있다'고 말한 것도 이런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말했다.
린훙원 금주간(대만 경제지) 고문. [사진=린훙원]"TSMC 2나노 공정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요 맞아"
린 고문은 현재 TSMC의 자신감이 인공지능(AI) 수요에서 나온다고 진단했다.
그는 "TSMC의 2나노(나노미터·10억분의 1m) 공정은 역사상 가장 강력한 수요를 맞고 있다"며 "2026년 주문은 이미 마감됐고 2027년 물량도 사실상 예약이 끝난 상태"라고 말했다.
TSMC는 현재 북부 신주과학단지 바오산 지역의 '20팹'(fab·반도체 생산공장)과 남부 가오슝 난쯔 단지 '22팹'을 중심으로 2나노 생산능력을 확대하고 있다. 두 공장의 월 생산능력은 2026년 말 기준 4만5천~5만장 수준으로 예상되며, 2027년에는 10만장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다. 미국 애리조나에 건설 중인 3공장 역시 2나노 공정을 중심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TSMC의 2나노 공정 양산 시설인 20팹(왼쪽)과 22팹 전경. [사진=TSMC 공식 홈페이지 캡처]린 고문은 "현재 TSMC에는 15개의 2나노 고객이 있으며, 이 가운데 10곳이 고성능컴퓨팅(HPC) 분야"라며 "엔비디아·애플·미디어텍·AMD·퀄컴·구글 등 AI 기업들이 첨단 공정 수요를 주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엔비디아는 2025년 일부 분기에서 15년 이상 최대 고객이었던 애플을 제쳤다"며 "AI 시대 들어 TSMC의 최대 고객도 바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목(막힘현상)은 선단 공정보다 '칩 온 웨이퍼 온 서브스트레이트(CoWoS)', '시스템 온 IC(SoIC)' 같은 첨단 패키징으로 이동하고 있다"며 "TSMC가 아무리 증설해도 수요를 모두 충족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용 대만행 화제…삼성 강점은 메모리+파운드리"
린 고문은 지난달 21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미디어텍 방문을 "최근 대만 반도체 업계에서 가장 뜨겁게 논의된 사건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그는 "이 회장이 삼성 노사 분쟁을 해결한 뒤 곧바로 대만을 찾았다"며 "외부에서는 글로벌 고객과 만나 공급망 중단 우려를 해소하고 전면적인 협력 기회를 개발하려는 행보로 해석했다"고 말했다.
대만 업계가 주목한 것은 삼성의 '메모리+파운드리' 카드다. 린 고문은 "삼성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메모리와 파운드리 서비스를 동시에 제공하는 기업"이라며 "현재 삼성의 강점은 메모리이고, 공급 부족 상황을 틈타 파운드리 점유율을 끌어올리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미디어텍이 단기간에 TSMC를 떠날 가능성은 낮게 봤다. 그는 "미디어텍에게 이번 회동은 TSMC를 버리고 삼성으로 전환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선택지"라며 "핵심 AI 맞춤형 반도체(ASIC) 사업은 TSMC의 공정과 CoWoS 생태계에 깊게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기회와 수주는 다르다"...한진만 발언에 주목한 대만
린 고문은 TSMC 전략을 설명하며 "대만 업계는 '식탁 위에 경쟁자에게 남겨둘 음식은 없다'고 말한다"며 "TSMC는 시장을 경쟁자에게 내줄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삼성의 가능성을 낮게 보지는 않았다.
그는 "생산능력이 부족할 때 고객은 위험 분산을 위해 반드시 제2 공급원을 찾는다"며 "현재도 적지 않은 고객이 삼성과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한진만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이 적자가 2027년까지 이어질 수 있다고 언급한 데 대해서는 "대만 업계는 이를 삼성이 직면한 현실을 인정한 발언으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린 고문은 "삼성 파운드리는 여전히 모바일 고객 비중이 높고 첨단 공정의 기술 성숙도와 수익성 측면에서도 과제를 안고 있다"며 "특히 2나노 공정 수율(정상품 비율)이 안정적인 양산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점이 업계가 가장 주목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첫 번째는 수율, 두 번째는 고객 신뢰, 세 번째는 조직문화와 종합 반도체 기업(IDM) 체제"라며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 순수 파운드리 기업인 반면 삼성은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를 함께 하는 구조적 과제를 안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TSMC의 생산능력 부족은 삼성에 기회를 줄 수 있지만 기회가 오는 것과 그것을 잡는 것은 다른 문제"라며 "결국 삼성 스스로 수율과 실행력을 증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린훙원 금주간 고문은? △자오퉁대 정보통신공학과 졸업 △중국 난카이대 경제학 석사 △대만 경제일보 기자 △금주간 부총편집장 △금주간 고문 △반도체·IT 산업 전문기자(취재 경력 30년 이상) △개인 미디어 '타이완 인사이드(Taiwan Inside)' 운영 △루이이광전(Radiant Opto-Electronics) 사외이사 △타이캉정밀(Taikang Precision) 사외이사 △'거물기업 삼성' 저자 △'TSMC: 세계 1위의 비밀' 저자
/권서아 기자(seoahkwon@inews24.com),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황세웅 기자(hseewoong89@inews24.com)포토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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