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련의 시도[박연준의 토요일은 시가 좋아]〈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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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살게 된 곳은 지대가 높아요. 가파른 골목에는 작은 세탁소 작은 꽃집 작은 전파사 그리고 작은 식당이 있어요. 작아서 모두 하나뿐이에요. 작은 식당은 슈퍼에서 가까워요. 영진슈퍼 앞 평상에는 늘어진 티셔츠를 입은 할머니가 앉아 있어요. 할머니는 아무것도 보지 않고 부채질만 해요. 나는 할머니 곁을 지나 식당에 가요. 식당 앞에는 길고양이들을 위한 물그릇과 밥그릇이 있어요.(중략)우리라고 불러도 될까요 본 적 없는 고양이 고양이 밥그릇 물그릇 꺾인 줄기에 꽃을 피워 올린 화분 산양과 나의 발 어둠에 기도처럼 잠기는 투명한 문과 창 그리고 영진슈퍼 할머니. ―이원(1968∼ )순한 동네를 생각하면 좋다. 순하다는 게 꼭 ‘온순하다’는 의미는 아니다. 온순하다는 말은 대상의 성격을 한정하는 말이지만 순하다는 말은 성격 너머 여백과 시간의 흐름까지 껴안는 말 같다. 이 시를 읽으면 해 질 무렵, 야트막한 언덕에 어린 산양과 앉아 있는 기분이 든다. 화자는 “작은 세탁소 작은 꽃집 작은 전파사 그리고 작은 식당”이 있는 동네에 산다.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이 많을 “영진슈퍼” 앞에는 늘어진 티셔츠를 입고 평상에 앉아 있는 할머니가 풍경처럼 있다. 길고양이를 위한 물그릇과 밥그릇도 있다. 이곳을 누비며 화자의 마음도 ‘순한 풍경’에 녹아든다. 한 사람이 작은 동네 속 “우리”가 되어가는 “일련의 시도”란 느리게 거닐기. 지면상 생략한 부분에 시의 백미가 있으니 꼭 전문을 읽어 보시라. 식당에 간 화자 앞에 “장난스럽게 고불거리는 얼굴”로 산양이 와서 앉는다. 왜 산양일까, 이런 생각은 들지 않는다. 순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산양의 눈동자가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곳이니까. 가본 적 없는데 그리운 곳이다. 박연준 시인© dongA.com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좋아요 0개 슬퍼요 0개 화나요 0개 지금 뜨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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