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용 라온시큐어 플랫폼사업본부장외산 최첨단 전투기를 도입하는 순간, 많은 이들이 영공 지배권까지 함께 확보했다고 믿는다. 하지만 하늘은 그리 쉽게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기체 도입보다 더 중요한 기술 이전 협상은 유독 치열하고 민감한 국가 차원의 난제로 꼽힌다.
인공지능(AI)도 다르지 않다. 외국 AI를 도입해 산업 생태계에 이식했으나, 어느 날 접근권이 막히자 크게 술렁인다. 인증 체계도, 데이터 처리 경로도, 보안 정책의 근거도 따지고 보면 외산에 너무 큰 비중을 위탁하려고 했다. 우리가 손에 쥔 것이 기술인지, 접속권인지, 돌고 돌아 다시 묻게 됐다.
트럼프 행정부가 앤트로픽의 고성능 AI 모델 '미토스5'와 '페이블5'에 수출 통제 지침을 내린 일은 이 질문을 정면으로 끌어냈다. 외국 국적자의 접근이 막혔고, 국내 기업과 공공기관이 참여한 글로벌 사이버보안 협력에도 제동이 걸렸다.
충격의 근원은 기술 격차가 아니라 관계 구조에 있다. 접속권을 기술로 착각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이번 사태는 아주 선명하게 보여줬다. 아직 초기 단계였기에 다행이지만, 국가 산업의 민감한 보안 판단과 통제 근거까지 외부 접근권 위에 얹었다면 상황은 훨씬 복잡해졌을 것이다.
AI 보안 주권은 추상적인 구호가 아니다. 누가 모델을 통제하는가, 데이터가 어디로 흐르는가, 인증과 권한의 기준을 누가 정하는가의 문제다. 결국 주권은 기술의 언어로 내려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AI 보안을 어떻게 설계하고 있나.
지금까지의 답은 대체로 탐지였다. 이상 징후를 포착하고, 침입 흔적을 분석하고, 사고 뒤 원인을 추적하는 방식이다. 더 강한 외산 AI 모델을 끌어다 쓰면 더 잘 보일 거라 믿었다. 미토스에 접근하려 했던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에이전틱AI 시대의 공격은 탐지가 작동하는 속도보다 빠르게 번진다. 공격자는 자격 증명을 탈취한 뒤 정당한 사용자처럼 시스템 안을 횡단한다. 뚫린 시점이 아니라 움직이는 경로가 진짜 전선이다.
이쯤 되면 질문이 바뀌어야 한다. '얼마나 빨리 탐지하는가'가 아니라, '침투 이후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로. AI 보안은 탐지의 문제가 아니라 사전 통제의 문제다.
그 체계를 국산 대규모언어모델(LLM)과 국내 보안 기술의 결합으로 만들 수 있다면 최선이다. AI 보안 주권이 선언을 넘어 실제 작동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 주목받는 '한국형 보안 언어모델(K-Security LM)' 논의도 여기서 출발한다.
한국형 보안 언어모델은 단순한 외산 모델의 대체재가 아니다. 국내 법·제도와 보안 기준을 반영하고, 데이터 주권과 감사 가능성, 통제 체계의 지속성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기반이다. 취약점 탐지와 침투 시나리오 분석, 공격 징후 해석과 대응 정책 실행을 우리 보안 체계 안에서 연결하는 주요 인프라가 될 수 있다.
이 기반이 있어야 AI 보안은 단순한 분석 도구를 넘어 통제 체계가 된다. AI 모의해커는 허점을 먼저 찔러보고, AI 가드레일은 위험한 명령과 데이터 흐름을 사전에 막는다. 에이전트에 대한 인증과 권한관리, 분산신원인증(DID), 행위 추적 기술은 그 움직임에 신원과 책임을 부여한다. 공격을 읽는 눈과 움직임을 막는 손이 같은 주권 안에서 작동해야 한다.
물론 글로벌 기술은 적극 활용하고 검증해야 한다. 다만 국가와 기업의 안전을 좌우하는 마지막 열쇠까지 넘겨서는 안 된다. 협력은 필요하지만, 의존은 전략이 될 수 없다.
미토스가 던진 진짜 질문은 그래서 더 분명하다. AI 보안은 누가 먼저 발견하느냐의 싸움에서, 누가 먼저 설계하고 통제하느냐의 싸움으로 넘어가고 있다. API가 열려 있을 때는 그 차이가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선명해졌다. AI 시대,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외산 기술을 빌려 쓰는 '더 좋은 접속권'이 아니다. 스스로 설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술 주권'이다.
이두용 라온시큐어 플랫폼사업본부장 dylee@ra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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