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상욱 HSAD 디스커버리센터장인공지능 전환(AX)의 파고가 비즈니스 전 영역을 집어삼키고 있다. 이제 기업의 마케팅 전략 수립부터 콘텐츠 제작, 고객 경험 설계에 이르기까지 인공지능(AI)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을 찾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이미 'AI를 사용하는 시대'를 넘어 'AI와 함께 일하는 시대'로 진입했다.
특히 생성형 AI는 인간의 생산성을 극적으로 끌어 올렸다. 과거에는 며칠이 걸리던 보고자료가 몇 분만에 만들어지기도 하고, 수십개의 아이디어를 동시에 비교할 수도 있다. 정보 탐색과 실행 속도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빨라졌다.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효율성과 생산성 측면에서 거대한 혁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눈부신 효율성의 이면에는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한 함정이 숨어 있다. AI가 제공하는 매끄럽고 완벽해 보이는 답이 오히려 인간 고유의 독창적인 사유와 문제 해결 능력을 서서히 퇴화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최신 연구는 이러한 우려가 단순히 기우가 아님을 과학적으로 증명했다. 연구진은 인간이 창의적 과제를 수행할 때 AI의 초기 제안을 접하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그 프레임 안에 갇혀버리는 디자인 고착(Design Fixation) 현상을 밝혀냈다. 인간의 뇌는 본질적으로 에너지를 아끼려는 성향을 지닌 인지적 구두쇠와 같다. AI가 그럴듯하고 완성도 높은 초안을 순식간에 생성해 제시하면, 우리의 뇌는 더 이상 깊은 근원적 질문을 던지지 않고 그 초안을 미세 조정하는 안이한 선택에 안주하게 된다. 기술이 주는 편리함이 인간 고유의 자발적인 사유와 과감한 발상을 저해하고, 결과적으로 창의성의 범위를 고착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결국 우리는 AI를 활용하면서 동시에 AI가 만든 평균적인 세계 안으로 수렴할 위험도 함께 안게 된 것이다. 이러한 디자인 고착 현상이 비즈니스 세계, 특히 고객 경험 생태계에 미칠 파장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모든 기업과 마케터가 유사한 거대언어모델(LLM)에 의존해 고객 여정을 설계하고 마케팅 메시지를 생성해 낸다면 어떻게 될까? 결국 어디서 본 듯한 브랜드 스토리, 예측 가능한 이벤트, 기계적 응대만이 시장에 범람하게 될 것이다. 개성과 진정성이 사라진 자리에 AI가 양산한 AI슬롭(AI Slop)이 들어차면서 소비자들은 극심한 경험적 피로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AI가 최적화를 목표로 설계된다는 점이다. 그리고 최적화는 종종 평균으로 수렴한다. 차별화가 생명인 시장에서 기술의 상향 평준화가 역설적으로 브랜드 경험의 하향 평준화와 동질화를 가속하게 되는 것이다.
AX시대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여기에 있다. 'AI를 얼마나 잘 활용할 것인가?'가 아니라 'AI를 활용해 어떻게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강화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 지점에서 주목받는 개념 중 하나가 바로 HAICo(Human-AI Co-Creation System)이다. HAICo는 인간과 AI가 협력하는 관계에서 발산적 사고(Divergent Thinking)와 수렴적 사고(Convergent Thinking)의 역할을 끊임없이 교차해 창의성의 지평을 넓혀 나가는 방식이다. 많은 이들이 AI를 단순히 결과물을 요약하거나 다듬는 수렴적 도구로만 보거나, 반대로 무한한 시안을 쏟아내는 발산적 도구로만 단편적으로 이해하지만, 진정한 협업은 이 두가지 사고방식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에서 일어난다.
창의성의 첫 단추는 발산적 사고여야 한다. 소비자의 미묘한 결핍과 삶의 맥락을 포착하는 인간 마케터의 직관으로 가설을 세우고 사유의 범위를 넓혀야 한다. 이 때 AI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간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이색적인 조합과 대조적 관점을 제시하며 또 다른 차원의 발산적 사고를 돕는 자극제가 된다. 반대로 AI가 수만가지의 가능성을 무작위로 발산해 낼 때, 그 수많은 파편 중에서 우리 브랜드의 철학에 부합하고 고객의 공감을 이끌 본질을 포착하여 엮어내는 것은 인간만이 할 수 있는 고도의 수렴적 사고다.
AI가 완성도 높은 파편들을 쏟아낼 때, 그것들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하나의 거대한 브랜드 세계관을 엮어내는 마케터의 수렴적 능력이야 말로 AX시대 대체 불가능한 자산이다. 이제 마케터는 AI라는 강력한 도구를 수하에 두고 발산과 수렴의 사유를 진두지휘하는 경험의 오케스트라 지휘자가 되어야 한다. AI를 통해서 속도를 높이되, 인간을 통해 방향을 만든다. AI를 통해 효율을 확보하되, 인간을 통해 의미를 만든다. AI를 통해 예측하되, 인간을 통해 아직 오지 않은 욕망을 발견한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 기업의 경쟁력은 단순히 더 강력한 AI를 보유했느냐에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중요한 것은 AI를 활용하면서도 브랜드만의 관점과 세계관, 인간적인 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다. 모든 기업이 비슷비슷한 AI를 사용하게 되는 시대에는 오히려 인간적 해석의 차이가 브랜드의 차이가 된다.
전상욱 HSAD 디스커버리센터장

45 minutes ago
1
![[부음] 김상부(세계은행 부총재)씨 모친상](https://img.etnews.com/2017/img/facebookblank.png)








English (U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