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태 칼럼] 이재명 정부, 기업들의 손익계산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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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종태 칼럼] 이재명 정부, 기업들의 손익계산서

역대 대통령치고 친(親)기업 행보를 하지 않은 대통령은 없다. 보수든, 진보든 마찬가지다. 경제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기업을 외면하고선 제대로 된 국가 경영이 어렵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친기업 행보에선 이재명 대통령도 뒤지지 않는다. 얼마 전 대기업 오너들 앞에서 “친기업, 반기업 이런 소리를 하는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고 물으며 “기업들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힘 있게 전 세계를 상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정부 역할”이라고 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친기업 행보 이면에는 정부와 정치권의 다른 잇속이 자리한다. 그 잇속이란 대체적으로 표와 연결된 것이고, 달리 표현하면 포퓰리즘과 맞닿아 있다. 이 정부 들어 도입했거나 추진 중인 정책들 대부분이 그렇다. 이들 정책으로 인한 기업들의 손익계산서를 따져보면 그 잇속이란 게 여실히 드러난다.

우선 기업들의 비용을 증가시키는 정책부터 나열해보자. 굵직한 정책만 해도 줄잡아 10개가 넘는다. 노동 관련이 가장 많다. 중대재해처벌법, 노란봉투법, 포괄임금제 금지, 최저임금 인상은 이미 확정된 것들이고, 주 4.5일 근로제와 정년연장 등은 추진 중이다. 기업들로선 대부분의 정책이 비용을 수반하거나 산업현장의 혼란을 초래해 정상적인 경영을 어렵게 한다는 이유로 신중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노동계에 빚을 진 정부와 여당은 막무가내로 밀어붙였다. 자사주 소각을 의무화하는 3차 상법 개정안도 기업의 자기자본비율을 악화시켜 재무 부담을 늘리거나 경영권 방어를 취약하게 하는 요인이지만, 코스피지수 5000을 달성해 1400만 명의 국내 주식 투자자를 만족시킨다는 정부와 여당의 욕심 앞에서 거스르기 힘든 분위기다.

법인세를 원위치시킨 건 실책 중의 실책이다. 조세정책의 기본 원칙은 경쟁과 효율이고, 국제적으로도 ‘저세율이 이긴다’는 인식이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기업과 산업을 놓고 국가 간의 유치 경쟁이 치열한 만큼, 한 나라의 조세정책도 되도록 낮은 세율을 가져가는 것이 정상이다. 경쟁과 효율은 조세정책을 통해 구현하고, 형평과 분배는 예산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런 측면에서 봤을 때 법인세율을 다시 높여 원위치시킨 것은 100m 경주에서 우리 기업들만 10m 뒤에서 출발하게 하는 거나 다름없다.

환경 정책은 기업들에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정부가 국제사회에 ‘환경 모범생’을 자처하는 대가로 기업들이 치러야 하는 비용은 너무나 크고 광범위하다. 정부가 공격적으로 제시한 온실가스 감축목표(2035년까지 2018년 대비 53~61% 감축)를 밀어붙이면 발전사를 비롯한 기업들은 연간 많게는 수조원의 배출권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이는 발전 원가 상승 요인으로 작용해 전기료 인상이 불가피한 수순으로 가게 된다.

이미 정부에서는 산업용 전기료 인상 군불 때기에 나서는 중이다. 산업용 전기는 최근 3년 반 동안 무려 70%나 올랐다. 2022년부터 일곱 번이나 인상돼 미국 등 주요국보다 비싸졌다. 정치적 결정으로 가정용 요금은 사실상 동결하면서 그 대가를 기업에 독박 씌우고 있는 셈이다. 기업에 부담을 주는 정책은 즐비한 데 비해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은 눈 씻고 봐도 찾기 어렵다. 그나마 있는 게 경제범죄 처벌 기준을 완화하겠다는 것인데, 집단소송을 모든 산업 분야로 확대 적용해 강화하는 법안을 동시 추진키로 해 오히려 부담이 더 커졌다.

대통령이 재계 회장단과의 만남에서 규제 정비를 약속한 것은 반가운 일이지만, 규제 해소야말로 모든 정부마다 목소리만 높였지 매번 헛구호로 끝난 단골 테마다. 규제 개혁은 약자인 체하면서 규제 울타리에 숨어 기득권을 누리는 수많은 집단과의 싸움에서 이겨야 가능한 일인데, 이 정부가 해낼 것이라고 믿는 기업은 별로 없다. 대기업의 인공지능(AI) 투자 물꼬를 터주자는 취지로 대통령이 지시한 금산분리 규제 완화도 공정거래위원장이 나서서 안 된다고 하는 마당이다.

결국 기업들 입장에선 비용을 늘리는 정책만 가득하고, 부담을 줄여주는 정책은 고작 한두 가지에, 그것마저 립서비스로 끝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앞설 수밖에 없다. 기업들은 묻고 싶다. “정말 기업을 위한 정부가 맞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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