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서쪽 변방?… 한반도까지 실크로드 이은 숨은 연결자, 위구르[강인욱 세상만사의 기원]

15 hours ago 2

재발견된 위구르의 천년 역사 중국 신장위구르자치구에 남아 있는 1200여 년 전 고창고성 유적. 위구르 제국 멸망 뒤 이주한 위구르인들은 이 일대에 고창 위구르를 세워 실크로드의 중심지로 발전시켰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강인욱 교수 제공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 중국 영토의 6분의 1을 차지하는 신장위구르자치구는 동서 문명의 교차로인 실크로드의 수천 년 역사를 품은 곳이다. 이 지역은 단골 국제 뉴스로 널리 알려져 있지만, 위구르의 역사적 함의는 간과돼 왔다. 위구르인들은 몽골 초원에서 위구르 제국(744∼840년)을 일궈 발해와도 교역했고, 한 갈래는 고려 때 한반도로 이주하기도 했다. 이후 위구르의 역사는 18세기 청의 중앙아시아 정복 전쟁과 20세기 소련의 민족 재편 등 수많은 사건으로 점철됐다. ‘중국의 서쪽 변방’으로만 알려진 위구르의 기원과 우리와의 관련성을 알아보자.몽골서 중앙亞로 옮겨간 사람들 위구르는 튀르크어족에 속하는 부족 연합에서 시작됐다. 그 이름이 역사에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몽골 오르혼(오르콘)강 유역에서 발흥한 위구르 제국부터다. 이 제국의 수도는 오르두 발리크 또는 카라발가순이라 불리는데, 성벽 둘레가 수 km에 달하는 대규모 도시 유적이 잘 남아 있다. 당시 이들은 스스로를 ‘위구르’라 불렀고, 당나라는 이를 한자로 회흘(回紇) 또는 회골(回鶻)이라고 썼다. 위구르는 757년 당나라의 요청으로 안사의 난을 진압하는 데 참여하며 위상을 떨치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위구르의 제3대 뵈귀 카간(황제)은 낙양에서 마니교 성직자를 만나 마니교를 국교로 삼았다. 위구르인들이 지금의 신장성과 인연을 맺은 것은 위구르 제국의 멸망 직후다. 그 일파가 한나라 시절부터 오아시스 도시가 고도로 발달했던 지금의 신장성 투르판 일대로 넘어와 정착했다. 이곳에서 ‘고창(高昌) 위구르’라는 나라를 세우고 마니교 전통과 불교 문화가 공존하는 실크로드의 중심 국가로 새 전성기를 맞았다. 13세기 몽골 제국이 팽창하자 고창 위구르는 일찌감치 몽골에 복속했고, 위구르인들은 몽골 제국의 행정과 문서를 책임지는 엘리트로 활약했다. 몽골 문자도 위구르 문자를 기반으로 창제됐다. 고창 위구르는 13∼14세기 몽골 제국의 정치 질서 변화 속에서 점차 쇠퇴했고, 이후 이 지역이 이슬람화되면서 위구르의 흔적도 함께 잊혀졌다.맞닿아 있던 위구르-발해의 교류 러시아 연해주 콕샤롭카 발해 성터에서 발견된 위구르계 격자무늬의 토...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