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늑구 현상

21 hours ago 4

입력2026.04.15 17:38 수정2026.04.15 17:38 지면A31

지난 8일 대전 오월드 동물원을 탈출한 수컷 늑대 ‘늑구’의 수색 작업이 1주일을 넘겼다. 늑구는 전기 울타리 아래 흙을 파낸 뒤 빠져나간 것으로 파악됐다. 탈출 당일 늑구가 인근 초등학교 앞 6차로를 배회하는 사진이 온라인에 퍼졌지만 인공지능(AI)으로 조작한 허위 제보로 밝혀졌다.

[천자칼럼] 늑구 현상

다음 날인 9일 오월드 인근 야산에서 드론 열화상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지만 이후 5일간 행적은 다시 묘연해졌다. 이재명 대통령은 X(옛 트위터)에 “어떤 인명 피해도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 늑구 역시 무사히 안전하게 돌아오길 기원한다”고 썼다. 그러다 14일 새벽 동물원에서 1.8㎞ 떨어진 야산에서 발견돼 생포 작전이 벌어졌다. 마취총을 피한 늑구는 포위망을 뚫고 달아났다.

대전 오월드에서 야생동물이 탈출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8년에는 여덟 살 암컷 퓨마 ‘뽀롱이’가 사육사 실수로 열린 문으로 탈출했다가 4시간 만에 산탄총에 사살됐다. 당시 국가안전보장회의(NSC)까지 소집될 정도로 전국적인 관심을 받았던 사건이다. 마취총에 맞은 뽀롱이를 사살한 것과 관련해 경찰의 과잉 대응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청와대 게시판에는 책임자 처벌과 동물원 폐쇄를 주장하는 항의가 빗발쳤다.

늑구 수색이 장기화하면서 관련 기사 댓글에는 “차라리 잡히지 말아라” “자유로운 산의 주인이 되길…” 같은 연민 가득한 댓글이 이어지고 있다. 시민들이 직접 만든 늑구 위치 추정 앱까지 등장했다고 한다. 누군가 이를 ‘늑구 현상’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좁은 동물원 우리를 벗어난 늑구의 탈출에서 자유에 대한 갈망을 읽어내고, 약자에 대한 인도적 연대감을 느끼는 이가 많다.

속박을 벗어난 야생동물의 도주는 묘한 해방감을 준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첫째도, 둘째도 안전이다. 2024년 1월생 늑구는 이미 성체(成體)에 달한 야생동물이다. 야생동물의 공격 본능과 예측 불가한 행동은 위험 요인이다. 늑구에 대한 연민이 아무리 깊더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이 위협받는 상황까지 가서는 안 된다.

이정호 논설위원 dolph@hankyung.com

Read Entire Artic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