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리아군은 로마군이 수적으로 열세인 것을 보자 로마군에 포위된 병사는 물론 그들을 구원하러 온 병사 모두 사방에서 함성을 지르며 사기를 북돋웠다.” 기원전 52년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갈리아(오늘날 프랑스) 동부 알레시아에서 갈리아족 부대를 포위하던 중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나선 병력에 역포위되는 아찔한 상황을 맞았다. <갈리아 전기> 속 묘사처럼 로마군은 앞뒤에서 달려드는 적과 사투를 벌인 끝에 승리했다. ‘알레시아 전투’는 이후 로마가 500년간 갈리아를 지배하는 길을 열었다.
봉쇄에 봉쇄로 맞서긴 쉽지 않다. 적대 세력을 물샐틈없이 가두는 봉쇄 전략에 대한 해법으로는 ‘돌파’를 떠올리기 십상이다. 하지만 역사의 분기마다 역봉쇄라는 사건의 판도를 바꾸는 발상의 전환은 생각보다 자주 일어났다.
나폴레옹이 ‘대륙 봉쇄령’을 내리며 유럽 대륙에서 영국산 제품 금수 조치를 취하자 1806년 영국 추밀원은 자국 식민지와 미국 등에 유럽 대륙과의 교역을 막는 역봉쇄령으로 맞섰다. 1942년 말 스탈린그라드의 포위된 몇몇 거점에 고립된 소련군은 대규모 역포위 전술로 나치 독일의 30만 병력을 독 안에 든 쥐 꼴로 가뒀다.
역봉쇄의 성패를 가르는 것은 무엇일까. 역봉쇄하려는 자의 힘의 우위와 그것을 뚫으려는 자의 의지 중에서 누가 더 센지가 판가름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알레시아에서 수적 우위에 안주한 갈리아족은 안이한 마음 탓에 역봉쇄 전략에 실패했다. 반면 나폴레옹전쟁 때 ‘세계의 공장’ 영국은 경제력 우위로, 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은 압도적인 병력을 무자비하게 앞세워 역봉쇄에 성공했다.
그제 미국이 이란 항구 봉쇄에 나서 호르무즈해협을 막고 있는 이란을 역봉쇄하는 모습을 취했다. 2주간 휴전으로 해협을 빠져나갈 채비를 하던 일대 선박의 발은 다시 묶였다.
미국의 이번 조치는 선별적으로 선박을 내보내던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약화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평화협정에서 주도권을 잡겠다는 의도도 읽힌다. 미국과 이란의 힘과 의지가 충돌한 이번 역봉쇄가 어떻게 끝을 맺을지 주목된다.
김동욱 논설위원 kimd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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